세상과더불어

재량권

임재수 2022. 10. 14. 19:23

배추에 거름이 부족하다고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재촉을 하셨다. 견디다 못해 헛골에 친환경 자재인 금수강산을 뿌렸다. 그리고 나서 모터 분무기를 가동해서 물을 뿌려 주었다. 가을 가뭄도 해소하고 거름도 빨리 녹을 것이니 도랑치고 가재 잡는 격이라고 하겠다.  유식한 말로 일석이조가 되고 요즘 유행하는 말로 하면 일타쌍피가 되는 셈이다.

 

하지만 두 시간을 뿌렸는데 350L 물통에 물이 거의 70% 이상 남아 있었다. 다음날은 수압 올리는 벨브를 잔뜩 조였다. 수압이 전보다 조금 센 것 같기도 한데 물통을 보니 여전했다. 수압 조절 벨브를 더 조이려고 했지만 여의치 않아서 연장으로 조였다. 그리고 한참 물을 주다가 중간에 딱 멈췄다.

 

가서 보니 모터의 스위치 바로 앞의 전선이 타서 끊어졌다. 후배 안모씨에게 사정을 설명했더니 모든 연장을 챙겨서 달려 왔다. 모터에는 이상이 없는 듯하다고 말하며 타서 끊어진 부분을 잘라 내고 새로 이었다. 컨센트도 탔다고 자기 집에서 적당한 것을 가져 와서 연결해 주었다. 잔뜩 조였던 벨브를 풀어 놓고 작동을 시키니 나오는 물의 양이 여전히 적었다.

 

물이 분사되는 꼭지를 빼 보려고 하다가 쉽게 빠지지 않으니 주저했다. 무리하게 힘을 주면 부러지는 수가 있다고 했다. "새로 사면 되니 걱정 말고 해 보시라"고 말했다. 인상을 써가며 힘을 주어 돌리니 빠졌고 물구멍을 막고 있는 좁쌀만한 알갱이를 빼내고 나니 시원스럽게 물을 내 뿜었다. 

 

세상일이 다 그렇다. 위임 받은 권력을 제멋대로 휘두르는 것도 안 되지만 그 반대도 문제다.  소신껏 일을 처리해야지 윗사람의 눈치만 살피는  조직은 위기 상황에서 제대로 대처를 못한다. 태안의 기름유출 사고 현장을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과 당시 해양경찰청장의 대화는 그런 점에서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이 사회의 중책을 맡은 사람들 법이나 제도가 적절한 재량권을 부여했는지, 부여된 재량권을 적절하게 행사는 하는지 모르겠다.

 

노무현대통령과 해양경찰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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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22년 가을)에 쓰다 중단한 것을 다듬고 보충하여 올린다(23.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