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과더불어

요즘것들은 아까운 줄을 몰라

임재수 2022. 11. 4. 18:09

요즘것들은 아까운 줄을 몰라

땅과더불어

2020-05-03 21:09:05


어제 저녁부터 내리던 비가 점심을 먹고 난 뒤에도 오는둥마는둥 사람을 헷갈리게 만들었다. 망설이지 말고 화끈하게 내리면 좋으련만, 그래야 옆 사람 눈치 안 보고 느긋하게 쉴 수 있는데 그놈의 날씨가 영 마음에 안 들었다. 창문을 열고 여러 번 확인을 하다가 그만 일어섰다. 비 오는데 어디 가냐고 옆에서 물었다. 고사리 밭에 풀 뽑으러 간다고 했다. <<그러니까 평소에 열심히 해야지 꼭 비오는 날 날구지 한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누구를 탓하겠느냐?>>고 지청구를 들었다. 고사리 밭에 풀도 뽑아야 하고 두릅나무 가지도 잘라 내야 하는데 시기를 놓치면 안 되는 일이라고 대답했다.

 

사실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옆사람은 새벽에 일어나 고사리 꺾어 왔는데 밤이 이슥하도록 페북질하고 늦게 일어난 내 처지가 영 찜찜하고 눈치가 보였던 탓이었다. 날씨 핑계로 그냥 쉬기는 너무나 염치가 없는 일이었다. 작년인가 언제쯤 이장님께 받아 둔 우비 윗도리만 걸치고 호미 하나 들고 나갔다. 차가운 기온에 강풍까지 불었던 것이 불과 며칠 전이었고 엊그제는 너무 더웠는데 오늘 나가서 보니 일하기 딱 좋았다. 이런 기회가 좀처럼 없는데 나오기를 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어 시간 지나고 슬슬 지겨워 지기 시작하는 차에 친구 00가 나타났다. 무슨 큰일이라도 있는 줄 알고 깜짝 놀랐다알고 보니 엊그제 엄마 보러 왔다가 대구로 복귀하는 중이었다. 지나 가다가 내 일하는 모습을 보고 찾아 왔다고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 한참 동안 나누다가 가려고 일어서는 친구를 잡고 인증샷 하나를 부탁했다. 그리고 나도 하던 일을 그만 끝내고 집으로 들어왔다.

저녁에는 표고를 볶았는데 맛이 어찌나 좋은지 입에 쩍쩍 달라붙는수준이었다. 어쩔 수 없이 맥주를 따서 옆사람 외손자 그리고 딸 넷이서 건배를 했다. 며칠 전에는 아들까지 와서 넷이서 건배를 했더니 36개월 된 그놈이 혼자만 먹고라고 떼를 쓴 일이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안전한 잔에 맹물로 채워주고 같이 건배를 했다. 셋이 한 병으로 부족해서 한 병 더 땄다.

 

그리고 저녁 먹은 후에 잠시 쉬고 있는데 카톡 소리가 울렸다. 대구에 도착한 친구와 또 다른 가리점 출신 친구들이 함께 모인 카톡방에서 나는 소리였다. 밭에서 찍은 내 사진도 올라 왔다. 새 우비 색갈이 화사하니 내가 봐도 참 멋있었다. 평소에 새 옷 안 사입고 낡은 옷만 걸치고 다닌다고 불평하시던 엄마 생각이 났다. “깨끗하게 잘 빨아 입으면 됐지 그게 뭐 그리 중요하냐고 내 딴에는 열심히 설득을 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 내 모습이 엄마한테는 늘 마음에 안 들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생각난 김에 그 사진을 보내 드렸다. 그리고 밭에서 거둔 오늘의 성과물도 함께 보냈다. 그러자 곧 전화가 울렸다.

 

니가 맨 정신이냐

왜요 또?”
우째 그런 옷 입고 드레 가나?”

이뿌자나! 그리고 그거 비싼 거라요. 내 돈 주고 산 것은 아니지만

그러니까 애끼 돗다가 나중에 이버야지

나중에 언제

소풍갈 때
내 나이가 며친데 소풍을 가여?”

말꼬리 잡지말구 새기 드러! 비싸고 조은 오싱께 나들이 갈 때 이버라 이마리다
그거 오늘 맹구로 비 오는 날 일하민서 이버라고 주는 오신데

머 거기 우비라고? 아까운 주를 몰라여 요즘 절믄 것들은! 잠깐 기다리 바라 너 아부지 바까 주께

드레 나와쓰만 열씨미 일해야지 먼 지시고?”
? ~그게 무~무슨 말씀?”

두 시 너머 나와 가이고 여섯 시도 안 대 지베 드가민서

비오는 날 그 정도 하만 안 댑니까?”

쪼매하다 차에 가서 저나 받고 또 카메라 꺼내서 사진 찍고 도대체 일은 운제 하노?”

사진 보시고 애썼다고 한마디 해 주실 줄 알았더니 여전하심니다. ㅠㅠ

그렁거 안 보내도 니가 어떠케 일하는지 다 안다
뒷미기서 여개가 얼마나 먼데

그 바테서 니가 하는 꼴 온동내 사람들 다 보고 있다. 그러니 여개 가만 누버 이써도 귀에 다 들어 온다. 긍께 사진 가튼거 찍지 말고 일이나 열씨미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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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확인하니 저 옷은 우비가 아니라 농약 칠때 입으라고 면사무소를 통해서 준 방제복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