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과더불어

병영체험과 귀촌생활

임재수 2022. 11. 4. 18:10

병영체험과 귀촌생활

땅과더불어

2020-05-09 22:26:11


연예 프로그램 중에서도 병영 생활을 소재로 담은 것이 나는 영 못마땅했다. 그런데 자주 전파를 타는 것으로 보아 나만 빼고 모두들 즐겨 보는 모양이었다. 어느 날 알 만한 사람들이 출연해서 외줄타기 등 유격훈련도 받고 얼차려도 받는 것을 보면서 투덜거렸다.

앞뒤 꽉 막힌 듯한, 고립무원의 절박함이 저기에도 있을까?”
고참들을 향해 연발 사격을 하고 탈영하는 악몽에 시달린 적이 저 사람들도 있을까?”
그러자 누군가 나를 보고 <못난이의 열등감>이라고 지적했다. “그래 너 잘 났다라는 말이 입에서 나오려는 것을 참았지만 나중에 생각해 보니 딱 맞는 말이었다.

 

체력도 약하고 운동 신경도 둔한 나는 27개월 동안 소위 고문관 노릇만 했다. 사격도 못하고 구보 태권도 총검술 뭐 하나 잘하는 것이 없었다. 혼자서 얼차려 받을 때도 힘들었지만 애꿎은 동료나 고참이 함께 고초를 당할 때는 너무너무 힘들었다. 내무반 생활도 그랬다. 신참 때도 힘들었지만 소위 중고참 때는 더 힘들었다. 아랫것들 시키고 감독이나 할 놈이 한가롭게 병기 수입이나 하고 자빠졌다고 터지는 일이 다반사였다. 내가 보기에는 멀쩡하게 잘 하는 신참들을 나보고 닥달하라고 하니 어이가 없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또는 우리 소대) 보급품을 잃어 버리고 다른 사람(부대)의 물건을 위치 이동 시켜 놓고는 내무반의 평화를 지켰노라고 자기 합리화를 할 때가 가장 비참했다. 내 대신 또 다른 누가(부대)가 엄청 깨지고 있다는 것은 애써 부정했다.

 

그건 그렇고 페이스북에 올라오는 나의 이야기와 사진이 어느 친구의 눈에 무척 거슬렸던 모양이었다. 은퇴 후 귀촌하여 물려받은 전답에서 체험 학습 수준의 농사를 짓고 사는데 그게 마음에 안 들었던 것 같았다. 사실은 탄핵 국면에서 시국에 대한 나의 태도가 마음에 안 들었던 것이 결정적인 이유였지만 엉뚱한 것으로 공격을 해왔다. 연금 타니까 귀족농부라는 말도 나왔고 지나치게 낭만적이라는 지적도 했다. 논두렁에 코 박고 자빠질 정도로 일을 해봤느냐는 힐난도 있었다.

 

그리고 삼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 보니 그 친구의 말이 악담(여기서는 차마 그대로 옮기지 않았음)이기는 했지만 내 자신을 돌아볼 구석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농사를 짓는 분들은 흉년이 들어도 걱정이고 풍작이면 가격 폭락을 걱정해야 한다. 생업이다 보니 힘들다고 쉬고 화난다고 때려 치울 수도 없다. 더위를 피해서 새벽에 일을 나가야 하고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도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도 있다. 그런데 내가 짓는 체험 학습 수준의 농사에는 <절박함>이 없다. 힘들면 쉴 수 있으니 그 옛날처럼 <탈영하는 악몽>에 시달릴 일도 없다.

 

사람은 자신의 경험과 처해 있는 상황에서 모든 것을 이해하고 평가한다. 그러니 남의 처지나 일을 속속들이 그리고 제대로 안다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것이 사람이 지닌 한계라고 할 것이다. 그럼에도 다른 사람의 삶과 처지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연예인들의 병영 체험이나 나의 귀촌 생활도 그 노력의 하나이다. 그러니 이제는 병영체험에 대한 불만도 거두어 들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