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적한호장군
잠적한호장군
2020-06-22 18:38:22
오늘도 호장군과 함께 초나라 오랑캐들 소탕작전에 나섰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양반이 잠적을 했다. 나 같은 백면서생이 무장의 힘을 빌리지 않고는 임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는 것은 자명하다.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고 거쳐 온 작전 구역을 되짚어 갔지만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오만 가지 잡생각이 다 들었다.
경계선을 넘어 이웃나라로 도망간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무능하다고 자주 타박을 한 것이 생각난다. 다시 생각해 보니 전부 내 탓이거늘 애꿎은 호장군만 나무란 셈이었다. 후회를 하면서도 ‘그 정도로 배신할 리는 절대로 없다. 믿음이 생명인데 동료를 의심하다니 말도 안 된다’고 스스로를 달랬다.
그러면 납치를 당한 것일까? 갑자기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이삼년 정도 화평을 유지하던 남북 관계가 요즘 들어 뒤틀리기 시작하니 충분히 그럴 수도 있지 싶었다. 그 정도로 가치가 있는 존재일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내부 분란을 일으키기에는 충분할 것도 같았다. 그러고 보니 저쪽 동네 엄보씨와 아배씨도 의심이 갔다. 우리 편인 척 하면서도 온갖 잇속은 챙기고 있는 것들이다. 은근히 싸움을 부추기는 것 같기도 했다.
하는 수 없이 전화로 장계를 올렸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하문하시기에 미전지역에서 초군을 소탕하던 중이라고 소상하게 말씀을 드렸다.
“거겸장군 대기하고 있응께 불러다 써시오”
“호장군은 어찌하고요?”
“그냥 내비두시오”
“끝까지 차자 바야지 우째 그키 매정해요?”
“일하기 싫어 가이고 잔깨 부리는 거지요? 그까짓 호매이 항개 이처넌 바께 앙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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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겸장군 : 거겸은 톱날처럼 된 낫인데 거(鋸)자는 톱을 뜻하고 겸(鎌)자는 낫을 뜻합니다. 그런데 거겸은 국어 사전에 안 나옵니다. 鋸鎌이라고 적혀 있어서 그렇게 불렀더니 일제 연장이네요. ㅠ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