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머지공부
나머지공부
땅과더불어
2022-07-24 08:22:10
--칠성아 학교가자!
곤하게 자고 있는데 밖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벌써 날이 훤하게 밝았다. 후다닥 일어나 책보를 싸는데 큰집 시야가 [오늘은 책보 안 싸도 된다]고 가르쳐 주었다. 누야가 채려준 밥을 먹는데 낯도 안 씻고 밥이 넘어가느냐고 혀를 끌끌 차는 소리가 들렸다. 먹는둥마는둥 숟가락을 지우고 일어섰다. 나오려고 하는데 옷 갈아입고 가라고 해서 갈아입었다.
밖에는 친구들 여럿이 모여서 제기차기를 하고 있다가 내가 나오자 함께 출발했다. 학교 운동장에 가서 보니 모두들 새 옷으로 갈아입었고 세수도 깨끗하게 했다. 호랑이 선생님 그러니까 할아버지(증조모님 친정 쪽) 되시는 분께서 조례대 위에 오르시더니 당부를 하셨다. 과자라도 사먹는다고 대오에서 이탈하면 절대로 안 된다고 여러 번 강조하셨다. 연단에서 내려오시더니 줄을 선 우리들 사이를 헤치고 다니시며 자세히도 살피셨다. 내 앞에서 걸음을 멈추시더니 침 흘린 자국이라고 손가락으로 지적하시며 당장 씻고 오라고 호통을 치셨다. 도랑으로 쫓겨 내려가 낯을 씻는데 얼마나 손이 시린지 손가락이 빠지는 듯했다.
줄을 지어서 출발했다. 다시 우리 동네 가리점을 거쳐 늘재를 넘어 농암으로 간다고 했다. 오를 때는 힘이 좀 들었지만 내려갈 때는 무지하게 쉬웠다. 한참 내려 가는데 우리 논에서는 아부지 엄마가 나락을 베고 계셨다. 감막을 지나니 큰도랑이 앞을 가로 막았다. 간밤에 비가 많이 내려서 돌다리가 물에 잠겼다. 어떻게 건너느냐고 발을 동동 구르는데, 뒷집 ◇◇ 아재 당숙인 ★★씨, 웃집에 사는 ◇◇형 세 사람이 기마전 하듯이 말을 지어서 나를 태우고 돌다리를 건넜다. 중간 쯤에서 내려다 보니 참으로 아슬아슬했다.
농암에서 버스를 타야 하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버스가 오지 않았다. 선생님께서 재촉을 하시니 정류장 아저씨가 자전거를 타고 지서로 가셨다. 거기에는 전화가 있어서 연락을 취해 본다고 하셨다. 한참 지난 후에 돌아오셔서 하시는 말이 어제 비가 많이 와서 버스가 못 온다고 했다. 순간 우리들 사이에 안타까운 탄성이 흘러나왔다. 가은까지 걸어가서 기차 타면 된다고 상급생 헝아들 중 누군가 아는 척하고 나섰다. 심각한 표정으로 선생님 두 분이 소근소근 상의를 하시더니 걸어 가자고 하셨다. 그때 우리들은 일제히 만세를 불렀다. 가은역까지 이십여 리를 다시 걸어야 했지만 그까짓 것은 별일 아니었다. 타 보기는커녕 먼발치에서 구경도 한 적이 없는 말로만 듣던 기차였다.
가은역 앞에는 군인이 앞을 가로막고 나섰다. 교관이라고 쓰인 하이바를 쓰고 장교가 가운데 그리고 조교 완장을 찬 병사가 좌우에 서 있었다. 우리가 도착하자 다시 줄을 세우더니 조교 둘이 각자 깃발을 꺼내 들었다. 상급생은 노란 깃발 앞에 서고 하급생은 파란 깃발 앞에 서라고 했다. 나는 아재들을 따라서 상급생 쪽으로 섰다. 그러자 우리 친구인 선호가 일러바쳤다.
--칠성이 자는 하급생인데 여개 오만 안대지요?
--나 항갑 지낸지 오래다 씨!
--농사 지인제 몇년 대써?
--십년 다 대감니다.
--완전 초짜가 항가비 무슨 소용이야. 저쪽에 가서 서
집으로 가자면 하느물 냇가를 건너야 하는데 혼자서 건너지 못하는데 참으로 난감했다. 파란 깃발 앞으로 옮겨 가면서 아재들 쪽을 살펴봤다. 마치고 기다려 줄 테니 걱정 말고 잘 배워 두라고 하셨다. 그래도 조금 걱정이 되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교관이 올라오더니 일장 훈시를 했다. 학교 다닐 때 많이 배운 것 여기서는 소용이 없다고 했다. 대학 나온 티 내면 절대로 안 된다고 했다. 내가 언제 티를 냈느냐고 따져 보려고 하다가 그만두었다.
끝나고 시험도 본다고 했다. 종이 위에 제시된 문제에 정답만 찾으면 되는 학교 시험과는 차원이 다르다. 정답을 맞추기 이전에 문제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면 고추밭에 가서 고추가 크는 상태 달린 고추의 모습을 보고 문제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 거름이 센 건지 약한 건지 가뭄을 타는지 해충이나 병이 발생할 조짐은 없는지 알아야 한다. 처방은 그 다음이라고 했다. 그거 내가 평소에 하던 말인데 그참 이상하다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잘 아시겠습니까? 아무개 선생님 졸지 마시고 열심히 배워 가세요!
쉬는 시간에 조교들한테 불려갔다.
--당신 말이야 꾸벅꾸벅 졸기만 하고 교육받는 태도가 영 마음에 안 들어! 박중위가 제자라고 믿는 구석이 있는 모양인데 그카만 안되지. 측정 때 불합격 나오면 우리도 입장이 난처하지만 박중위까지도 피해를 본다고. 그래도 그양반 선생님이라고 봐 주는 것 같은데 우리는 그냥 넘어 갈 수 없다 이말이여. 어이 정일병 누가 안 오는지 저쪽 잘 살펴 봐. 지금부터 얼차려를 실시한다. 안자 일어서 안자 이러서. 어 동작 보소! 뒤로 취침 앞으로 취침 뒤로 취침. 자로 굴러 우로 굴러!
호각 소리가 울렸다. 다시 교육 시간이 시작되었다. 절대로 졸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면서 들어갔는데 다행히 이번에는 논둑 깍기 실습이란다. 동네 친구들만큼은 못하지만 어릴 때부터 쇠먹이를 많이 했기 때문에 낫질은 좀 할 줄 안다. 왼손으로 풀의 윗 부분을 잡고 오른 손으로 낫만 당기면 완전히 초짜다. 왼손으로 중간쯤 잡고 그 밑에다 낫을 걸어서 당길 때 왼손도 함께 당겨야 손을 베지 않는다. 전입 간 다음 해 일병 때인가 선임하사 눈에 들어 가끔 동원된 적이 있었다. 너나 없이 뺑뺑이 돌아야 하는 일과시간에 풀 베기는 그야말로 신선놀음이었다. 그 덕에 고참들 미움도 좀 샀지만 말이다.
차에 있는 낫을 찾아서 풀을 베기 시작했다. 혀를 끌끌 차는 소리에 돌아 보니 교관이 옆에 서 있다. 요즘 낫질하는 농업인이 어디 있습니까? 어이 조교 예초기 빌려 드려! 정일병이라는 사람이 예초기를 매고 왔다. 기름은 가득 들었으니 그냥 줄을 당겼다. 여러 번 당겼지만 영 반응이 없다. 아차 기름 밸브를 안 열었다. 기름 밸브를 열고 몇 번을 당기다가 초크 벨브를 위로 올렸다. 단번에 시동이 걸렸다. 둘러 매고 논둑으로 가서 가속 레버를 당기니 시동이 끄졌다. 내려 놓고 시동을 다시 걸고 시작하려고 하면 또 끄졌다. 여러 차례 그랬다.
하는 수 없이 후배 안모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정을 설명하니 초크 벨브를 올려서 시동을 걸고 나서 조금 뒤에 다시 내려야 한다고 했다. 전화를 끊은 뒤 다시 시동을 걸려고 하는데 조교가 제동을 걸었다. 이것도 시험인데 엄연한 부정행위니 묵과할 수 없다는 말이었다. 기가 막혀서 어쩔 줄을 모르고 서 있는데 교관이 나섰다. 어떻게 보면 부정행위지만 또 다른 차원에서는 살려는 발버둥이라고 했다. 농사라는 것이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배우고 선배들에게 물어서 터득하는 것이니 이 정도로 끝내자고 했다. 대신에 나머지로 저 풀 다 깎고 보내라고 지시를 하고는 떠났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조교의 입회하에 나머지 공부를 마치고 나니 아니 논둑 깎기를 끝내고 보니 어둠살이 퍼지기 시작했다. 예초기를 창고에 반납하고 나오니 아무도 없었다. 조교도 없고 교관도 없다. 함께 교육받던 동기들도 그리고 같이 가야 하는 아재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엄마를 불러도 아부지를 불러도 아무도 대답이 없다. 이 세상에서 가장 번화한 곳, 하지만 낯익은 사람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 농암 장터를 엉엉 울면서 혼자서 헤매고 다녔다.
전화기가 울려서 눈을 뜨고 보니 상주시지역개발지원센터(이안면 소재)로 가는 차 안이었다. 운전을 하던 00씨는 무슨 잠을 그렇게 곤히 자느냐는 듯이 빙그레 웃고 있었다. 금년 봄에 아랫집으로 귀농한 젊은 사람인데 마을 일에 아주 적극적이었다. 오늘 저녁에는 시간이 안 나니 다음으로 미루자는 ★★의 전화였다. 그러자고 하고 끊었다. 교육 마치고 오는 길에 둘이서 저녁이라도 먹으려 하다가 다른 젊은 사람도 함께하면 분위기가 더 좋겠다고 해서 다음으로 미루었다. 우째 너는 일할 생각은 안하고 모여 놀 생각만 하느냐고 혀를 끌끌 차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7월 25일에 완성하여 "2022년 상주동학농민혁명기념문집"에 보낸 글입니다. 9월 1일에 책이 나왔다는 소식에 공개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