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지게와 동소나무
기지게와 동소나무
세상과 더불어
2022-08-29 23:58:31
모두들 “기지게”라고 했다. 소대 내에서 방독면 야전삽 대검 등 모든 장비를 관리했다. 장부를 작성 관리하고 실물의 현황을 파악했다. 분실하지 않도록 하급자들을 닦달했다. 아무리 그래도 결손은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면 무슨 수를 쓰더라도 채워 놓아야만 했다. 어쩔 수 없이 특공대를 편성하여 다른 곳을 넘보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그러니 기지개의 책임과 권한이 막중했고 졸병들에게는 무시무시한 군기반장이었다.
그런 명칭이 어디서 왔는지 소위 가방끈이 좀 긴 사람들은 의문을 품기도 했지만 정답은 찾지못했다. 말년이 되어갈 무렵 “보급00”라 부르라는 지침이 상부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40년이 지난 어느 날 정답 비슷한 것이 페이스북에서 나왔다. 어느 페친이 “기재계(器材係라고 추측)”라고 쓴 것을 보고 “기지게”가 생각났던 것이다.
상주 시내에는 [동소나무]가 지금도 있다. 중학교 시절부터 그렇게 들었고 그런 줄로만 알았다. 졸업하면서 상주를 떠났으니 관심 밖으로 사라졌다. 서른을 전후하여 다시 상주에서 근무하던 어느날 동소나무를 직접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소나무가 아니었다. 알고 보니 [동수(洞樹)]와 [나무]의 결합이었다.
주고받는 과정에 오해가 많은 것이 말(음성언어)이다. 그 오해를 막으려고 포병부대에서는 “하나, 둘, 삼, 넷, 오, 여섯, 칠, 팔, 아홉, 공”이라는 숫자를 쓴다고 하지만 그 역시 한계가 있다. 그러면 문자 언어는 결점이 없느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그래서 중요한 내용을 전달하거나 강조할 때는 두 가지를 동시에 사용하기도 한다. 선거 운동 과정에 “기호○번”이라고 외치면서 손가락을 펴는 것(기호에 맞게)이 그렇다. 수업 중에 교사가 중요한 내용을 말로 반복하면서 분필로 밑줄을 치는 것도 같은 보기라고 하겠다.
대통령의 임무는 막중하다. 긴 시간 심사숙고해서 결정할 중차대한 일도 있지만, 분초를 다투는 신속한 결정이 필요할 할 때도 있다. 그러면서도 그 결정은 정확해야만 하고 한치의 실수도 있어서는 안 된다. 그 신속하고도 정확한 결정을 위해여 청와대에는 아마도 최신식 설비가 갖춰져 있을 것이다.
“휴전선 근처에서 분쟁발생”이라는 육성과 동시에 화면상에는 문자도 나타나고 지도상 위치도 함께 표시된다. 가장 가까운 곳에 주둔하여 즉시 출동할 수 있는 우리측의 병력 규모와 거리도 화면상으로 나타날 것이다. 직접 봤느냐고 물으신다면 할 말이 없다. 어쩌면 내가 상상도 못하는 더 훌륭한 첨단 장비가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집중호우가 예상되는 시간에 퇴근하여 고립되었다는 비판에 “대통령이 있는 곳이 상황실” "전화로 보고 받고 지시했다"는 해명이 나왔다. 당연히 그래야만 한다. 하지만 99점 짜리 상황실(청와대)을 버리고 70점짜리 상황실(용산?)로 이사한 것은 이해가 안 된다. 그리고 그 긴박한 순간에 40점짜리 상황실(사저)로 퇴근한 것은 더더욱 그렇다. 이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앞으로 이런 상황은 없을지 모르겠다.
--누기야?
--전하 고성현감이옵니다.
--곤하게 자는데 먼일이야
--산불이 났습니다.
--주민 동은해서 끄야지?
--역부족입니다. 인근 고을의 지원이 필요하옵니다.
--고흥 장흥 순천 화순 사또들은 즉시 병력을 거느리고 보성 고을로 출동하시오
--전하 보성이 아니고 고성입니다.
--여보시오 중전 고성 인근에 있는 고을이?
--진주 창원 사천 통영이옵니다! 전하!
--네 고을에 파발을 띄우시오!
고성현감을 지원하여 산불을 진압하기 위하여 출동했던 네 고을 사또들은 결국 허탕만 치고 그냥 돌아 왔다. 산불이 난 곳은 경상남도 고성이 아니고 강원도 고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