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과 돋보기
스마트폰과 돋보기
웃음과더불어
2018-07-25 14:46:24
요즘 일용엄니 신명이 났습니다.
'시상에 머 이런기 다있노 '
'어데 숨었다가 이제야 나타났노'
'한 십년 내 인생 헛 살았다'
대충 이런 심정이었습니다. 두 가지 안경을 벌갈아 가면서 썼다 벗었다 좀 번거롭기는 했지만 그 속에는 분명 또 다른 세상이 있었습니다.
동기는 별로 없고 후배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동창회 단톡방에서는 깨톡깨톡 깨 쏟아지는 소리가 밤낮으로 울려 퍼졌습니다. 그리고 손자들 사진이 찰나에 오고갔습니다. 기차시간 버스시간 그 안에 다 들었고 종이로 된 수첩과 장부는 지난 달에 그만 두었습니다.
서울 사는 친척 조카가 며느리 본다는 날 농사일 바쁜 일용이를 두고 혼자서 서울로 갔습니다. 김회장댁 둘째 며느리의 도움을 받아 사흘전에 기차표는 예매했습니다. 일용이가 기차역까지 태워 준다는 걸 사양하고 시내버스를 타고 기차역까지 갔습니다. 불안해 하는 아들을 보고 '야 늘그니 취급하지 마라' 하고 웃음기 섞인 핀잔도 주었습니다.
기차가 두 시간을 달려 서울역이 가까워 오자 다시 그놈을 꺼내 들고 돋보기 찾아 쓰고 복습을 시작 했습니다. 그 안에 들어 있는 지도인지 노선도인지 몇번이고 보고 확인을 했습니다.
'4번 출구를 나가서 어쩌고 저쩌고~'
"할머니 서울역에 도착했는데 안 내리십니까?"
누군가가 말을 건넸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기차는 벌써 서울역에 도착했는지 손님들 태반이 내렸으며 나머지도 짐을 들고 출입문 앞에 늘어서 있었습니다. '나 아직 할머니 아니걸랑' 하는 말이 목구멍에 나오는 것을 간신히 참았습니다. 안경을 갈아 끼고 스마트폰을 챙겨 허둥지둥 내렸습니다.
개찰구를 나와서 보니 4번 출구가 보여서 그리로 갔습니다. 출구를 나와서 조금 가다 보니 교차로가 보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오른쪽인지 왼쪽으로 가야 하는지 헷갈립니다. 확인하려고 스마트 폰을 꺼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없습니다. 스마트폰은 있는데 돋보기가 안 보이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니 기차 안에서 복습하다가 그냥 두고 내린 것 같았습니다.
아! 이걸 어쩌나 스마트폰이 아무리 좋아도 돋보기가 없으니 일용엄니에게는 고철덩어리였습니다.
올해 여든 네살 잡수신 우리 동네 김성림여사께서 얼마전에 스마트폰을 시작했습니다. 열심히 배워서 지금까지 보았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세상을 경험해 보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박수를 보냅니다. 그 마음과 돋보기가 없으면 불편한 저의 경험을 섞어서 이야기를 만들어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