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여행
졸업여행
소소한 일상
2018-12-18 12:27:57
처음에는 일주일 동안 도서관에서 책이나 열심히 읽을까 생각도 해봤다. 그런데 책이고 글씨고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결국 한 시간도 안 되어 포기하고 말았다. 대충 가방을 챙겼다. 고향에 가서 농사일이나 거들어 드리겠다고 생각을 했다. 갑자기 무슨 일이냐고 누님이 물으셨다. “가정실습”이라고 말씀드렸다. 저녁 무렵 도착하니 아버님께서도 놀라셨다. “가정실습”이라는 말에 고개를 갸우뚱하셨지만 더 이상 캐묻지 않으셨다. 마실 나가서 친구들과 술도 한잔하고 이야기 좀 나누다가 밤늦게 집으로 들어와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모두들 들에 가셨는지 아무도 없었다. 낫을 갈아서 지게 위에 얹어 뒤뜰 논으로 나갔다. 논둑을 깎아서 바소가리 위에 얹었다. 한 짐 해다가 집에 내려 놓고 이번에는 예초기를 메고 나갔다. 들깨 골 사이의 풀을 깎았다. 윙윙 소리를 내며 한참 잘도 돌아가더니 갑자기 멈췄다. 들여다보니 안전 날개와 칼날 사이에 칡덩굴이 마구 뒤엉켰다. 차로 가서 연장통을 찾았는데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저 멀리서 막내 동생이 나를 부르며 급히 달려 왔다. 손에는 지릅대로 만든 매미채를 들고 있었다. 누야들이 집에 와서 나를 찾는다고 했다.
앞 도랑에서 세수를 대충하고 집에 들어서니 누님과 여동생 둘이 마루 위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수학여행 간다카던데?”
“.....”
“대학교에서는 가정 실습 같은거 읍다 카더라”
“못가는 사람 나 말고도 만타. 놀러 가는 거 안가도 댄다”
“학창시절 평생 한분인데 댕기 온나”
“오빠야 우리가 돈 다 냈다”
순간적으로 나도 그만 마음이 흔들렸다.
‘학교도 못간 동생들이 철야 근무해서 번 돈인데’
‘학교 댕기는 것도 감지덕지지 여행은 무슨’
‘그래도 벌써 돈 다 냈다카는데’
그러고 있는데 아버님이 한마디 하셨다.
“그래 니들이 참 잘한다. 그러니까 니들 오빠는 장남이고 집안의 기둥이니 니들이 뒷바라지를 잘 해주만 나중에~”
그런데 저쪽 뒤에서 어린 조카들이 함께 나를 바라본다. 아주 애처롭고 원망스러운 눈초리다. 못이기는 듯이 받아들이려고 하던 나는 그만 가슴이 뜨끔했다.
“아부지요 안 가도 댑니다. 니들 마음은 눈물나게 고맙지만~”
그리고 나는 벌떡 일어나서 과대표인 김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사정을 설명하고 여행비 환불을 요구했다.
“그 돈이 어떤 돈이냐 하만~”
“안 댈 걸 그래도 혹시나 알 수 읍승께 허총무한테 알아바”
다시 전화를 걸었다. 허총무의 대답은 절망적이었다. 벌써 비행기표 끊었고 펜션도 예약을 했으니 환불은 절대로 안 된다고 했다.
“오빠야 이왕 그리 댄거 맘 핀하기 그냥 댕기 와라”
그러는 순간 승용차 한 대가 우리 집 앞에 딱 멈췄다. 차문이 열리더니 두 사람이 내렸다. 점촌 사는 배모와 강모 두 친구였다. 둘은 내 팔을 잡아 끌더니 차 안으로 밀어 넣었다.
“야 이 친구야 비행기 시간 얼매 안 나맜다.”
“동생 잘 댕기와”
누님이 창문 밖에서 손을 흔들었다. 친구가 모는 차는 신나게 잘도 달렸다. 다른 친구들은 벌써 공항에 도착해 있었다. 내가 차에서 내리자 박수로 환영을 해 주었다.
비행기를 타기 위한 줄은 무척 길었다. 그래도 조금씩 그리고 한사람씩 앞으로 나아갔다. 앞서 있던 친구들은 다 빠져 나가고 내 차례가 왔다. 엄지손가락을 대라고 했다.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다른 손가락을 올려 보라고 했다. 몇 번이고 반복을 했지만 굳게 닫힌 빗장은 열리지 않았다. 한참 그러는데 요란스럽게 비상벨이 울렸다. 험상궂게 생긴 정복 입은 사람들이 나타나서 나를 옆방으로 끌고 갔다. 저쪽으로 건너간 친구들이 빨리 오라고 아우성을 친다.
“당신 무슨 돈으로 여행 갑니까?”
“긍께 ~ 저게~ 무슨 돈이냐 하만”
나는 말문이 막혀서 제대로 말이 나오지 않았다.
“ㅉㅉ 동네 초상이 났는데 향우회장이란 사람이”
“우리 잔치도 안 보고 놀러 가만 섭하지”
“그 돈으로 여행 가만 나중에 나보고 갚으라고”
“안 가만 대자나 내가 운제 가고 싶다캔나”옆에 있던 보안관들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고 아내와 이장과 이번에 며느리 보게 된 친구가 나를 쳐다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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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번 모임에는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요즈음은 두어달에 한번 정도 모이게 되니 40여년 전의 그날처럼 그렇게 마음이 아프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사전 약속을 해놓고 못간 것이 조금 미안해서 기행문을 아니 불참 사유서를 적어 봤습니다. 과거의 일이든 오늘의 일이든 사실은 1%밖에 아니니 오해 마시기 바랍니다.
연말이 다가오니 여러 가지 행사가 많았습니다. 1박2일의 동기 모임이 대전에서 있었는데 15일 점심때쯤 끝날 예정이었습니다. 그날 오후 세시에는 청주의 또 다른 동기의 잔치에 참석할 작정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11시 30분에 수원에서 있는 당숙 어른댁(사실 나보다 젊은 분) 잔치는 옆 사람이 가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을 사람이 함께 견학을 갔던 12일에 원로 어르신의 부음이 들려왔습니다. 그리고 마을을 지키고 사는 사람들과 출향인사들이 합심하여 14일에 고인을 모셨습니다. 고인의 행장은 다른 기회에 정리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