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과더불어

음모의 실체

임재수 2022. 11. 4. 17:11

음모의 실체

웃음과더불어

2019-01-17 20:46:17


변기 위에 앉아서 계속 중얼거렸다. 일종의 자기최면인 셈이다.
"나갈 때는 불을 끈다. 잊지 말고 불을 끈다. 반드시 불을 끈다. 명심하고 불을 끈다. 끈다. 끈다. 끈다................"
정말이지 어제는 나갈 때까지 잊지 않았다. 나와서는 조심스럽게 문을 닫고 정신을 바짝차리고 신중하고도 신중하게 스위치를 눌렀다. 그러고 나서 안방을 주목하니 방문이 열려 있었다. 그리고 그분은 침대 위에 누워서 스마트폰과 놀고 계셨다. 나는 아주 공손하게 그러나 아주 명료하게 보고를 드렸다.
"이번에는 명심하고 화장실 불을 껐습니다."
"틀림 없으시겠지요"
"그럼요 어느 안전이라고"
"참 잘 했어요"

그리고 나는 페부기하고 놀고 있었다. 그런데 인기척이 나더니 그분이 화장실 앞에서 한마디 하신다.
"아~니, 불을 끄~었~다고?"
"그럼요"
"여개 보소"
그분이 화장실 문을 열었다. 자세히 보니 또 불이 켜져 있다. 나는 그만 기가 막히고 말문이 막혔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건 필시 음모여'
'겅깨 그분이 국정원을 동원해서'
'아니야 그럴 리가 읍서'

저녁에 자리에 누워서도 온통 그 생각만 했다. 
'내 반드시 곡절을 밝히고 누명을 벗으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을 했다

다음날 점심 먹고 나서 전화를 받는 중에 또 소식이 왔다. 나는 급한데 상대방이 너무 오래 끌었다. 중간에 급하다고 둘러대고 끊었다. 후다닥 들어 가서 엉덩이를 까고 앉았다. 위기에서 벗어나자 어제의 일이 그제서야 생각이 났다. 다시 주문을 아니 자기 최면을 걸기 시작했다.
"불을 끈다 불을 끈다 반드시 불을 끈다"
그러다가 나는 주변을 둘러 보았다. 나는 그만 경악하고 말았다. 음모의 실체가 밝혀졌다.

오늘도 나는 화장실에 들어 오면서 불을 켜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 놓고 나갈 때 정신을 바짝 차리고 심호흡을 하면서 불을 끈다고 스위치에 손을 대면 십중팔구는 불을 켜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어제도 들어 갈 때는 불을 켜지 않았지만 나올 때 불을 끈다고 도리어 켰던 것이다. 범인은 다름 아닌 나였다. ㅠㅠ

그런데 문제를 내 놓고 페친 여러분이 올리신 답을 보니 출제 미스임이 분명하다. 화장실 구조 전등이나 환풍기의 스위치 등 각자에 사정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답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 정답은 하나가 아니었던 것이다. 교직생활할 때 출제 미스가 나오면 골머리를 많이 알았는데 또 그랬다.

우리집 화장실은 남서쪽에 창이 나 있다. 아주 작은 창이지만 오후에는 제법 많은 빛이 들어 온다. 전등을 켠 것과는 엄청 다르지만 나는 워낙 둔한 사람이라 그런 실수를 가끔한다. 가끔 있는 실수를 부풀려서 이야기 해 봤는데 "경악"이라는 말이 좀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물론 켜고 들어 가서 나올 때 까먹는 경우가 대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