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과더불어

첩첩산중

임재수 2022. 11. 4. 17:15

첩첩산중

웃음과더불어

2019-02-02 10:43:58


언제 부터인가 박여사님의 심기가 영 불편했다. 가끔 한숨 소리가 들리고 짜증도 냈다. 말하는 것이랑 전후 사정을 살펴 보니 동기 모임을 다녀 오고 난 다음부터 그런 것 같다. 학창시절 옆자리에 앉아 공부했던 점백이가 귀부인이 되어서 나타났다고 했다. 물론 잘나가는 신랑 만나 점도 빼고 성장을 했으니 이제는 점백이가 아니라고 했다. 가끔씩 지갑을 열어 친구들에게 한턱 내면서도 티를 안내니 요즘 인가가 좋다고 했다..

"내는 그동안 머 해쓰까?" 

"능력 좋은 친구여?"
"내보다 공부도 모했꺼등"
"열씨미 노력 햇겠지"

"우리는 두리 일하자나? 발버둥 쳐바아 한 사람만도~"

가만히 듣고 보니 나와 그 남자를 비교하는 듯했다. 자존심이 팍 상해서 그냥 입 다물고 말았다.

 

그리고 얼마후 그러니까 며칠 전의 일이었다. 그날도 박여사는 동기모임에 나가고 4학년 짜리 덜렁이와 밥을 해먹고 기다렸다. 박여사는 좀 늦게 취해서 들어왔다. 또 다른 단짝이었고 지금도 자주 어울리는 이여사도 함께 왔다. 그냥 가려는 사람을 차나 한잔 하고 가자고 끌고 왔다고 했다.

"점백이 위로해 주느라고 말순이가 조금 과했으니 용서하이소"

이여사의 변명에 나는 커피를 세 잔 타서 권하면서 말했다..

"에구 용서는 무슨~. 그런데 잘나가는 사람을 두고 위로를 왜 했습니까?"
"돈 잘 벌고 능력 있는 사람 만났다고 행복한 것은~"

"무슨 일 있답니까?"

"바람을 피운다나 봐요. 부산에다 딴 살림을 차린게 오래 전인데 그동안 모르는 척했답니다"

"ㅉㅉ 조선시대 현모양처 환생인가 봅니다"

"자존심 같았습니다. 남들 앞에서 귀부인 행세하고 행복한 척하고 싶었답니다. 그래서 친구들 만나서 밥도 자주 사고~"

"그러면 계속 그렇게 살지 않고~"
"또 다른 여자가 생겼답니다. 이번에는 울산에다 집을 얻어 놓고 다니는 것을 며칠 전에야 알았다네요"

"부산에도 첩 울산에도 첩이라 말그대로 첩첩산중이 되네요"

"아 첩첩산중에 그런 뜻이 있네요 ㅋㅋ 유머 감각이 대단하십니다!" 그러더니 박여사를 보고 한 마디 했다.
"말순아 니 신랑 소중한 줄 아러~.  잘난 누구 신랑하고 비교하지 말고!"

그러자 박여사가 갑자기 나를 안고 뽀뽀를 퍼부었다.
"그려 우리 신랑 최고야, 점백이 신랑 항개도 안 부럽다"
그런데 이여사가 박여사 등짝을 치면서 한 마디했다.

"어이그 주책 바가지! 덜렁이 보고 있응께 조심해! 나 간다 잘 자거래이~"

이여사가 가고 난 뒤의 이야기는 말이나 글로 옮기기 거북하니 그냥 넘어 가겠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앞질러 과장이 된 맹모씨가 나를 불렀다. 기획안을 앞에 놓고 지적 겸 짜증이 한참 이어졌다. 선배 대접한다고 말은 정중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가시가 박혀 있었다. '차라리 그냥 하대 하십시오'라는 말이 튀어나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비빔밥>을 많이 먹었든 말았든 남보다 먼저 그 자리에 앉았으니 <볶음밥>을 먹을 권한과 책임도 가지고 있으려니 생각하고 말았다.

 

자리로 돌아와 반려된 기획안을 다시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삭제나 추가 그리고 수정 사항을 적은 것이 두 사람의 필적이다. 부장실에서 질책을 많이 받았으니 맹과장도 기분이 상했을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렷다. 전면적으로 손질을 하자면 너댓 시간 안에 끝날 일이 아니다. 머리도 식힐 겸 잠시 휴게실로 들어갔다. 담배 하나 꼬나 물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입사 동기인 박대리가 문을 열고 불렀다.

 

"공대리 저나 바다"

"누구래여"

"모~ㄹ라 목소리는 참 이쁜디"

"예 총무과 대리 공처사입니다"

"저~ 공만석이 아버님 되십니까?"

"예 그런데 뉘신지?"

"만석이 담임입니다."

"아~ 선생님께서 어인 일이십니까? 혹 우리 애가 말썽이라~"

"도대체 애들 앞에서 무슨 말씀을 하신 겁니까?"

"왜 그러십니까?"

"그러니까 오늘 첩첩산중이라는 말이 나왔는데~"

"예~"

"그런데 만석이가 손을 들고 나서더니~"

"~"

"그렁께 울산에도 첩 부산에도 첩 뭐 이런 이상한 말을~"

 

순간 둔기로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것처럼 나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조금 전에 맹과장 앞에서보다 더 공손하게 자세를 낮추었다. 아마 선생님이 눈 앞에 계셨더라면 무릎이라도 꿇어야 했으리라. 그 상황을 어찌 설명하고 해명을 할 것인가? 그냥 더듬 거리다가 

"무조건 죄송합니다. 아이들 앞에서는 절대로 말 조심하겠습니다"는 말로 사죄를 드리고 끊었다. 

 

그런데 이놈이 어디까지 보고 어디까지 말을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