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과더불어

영재학급과 청춘학당

임재수 2022. 11. 7. 08:49

을사년 음력 시월 어느날 그러니까  동갑나기 내 친구 만복이네 집에 사람들이 모였다. 칠순을 며칠 앞 두고 있었지만 잔치판을 벌인 것은 아니고 마실 사람만 불러서 한잔 했다.  기분 좋게 마신 술이 조금 과했던지 두 사람 사이에 다툼이 있었다. 차츰 언성이 높아지다가 멱살잡이가 벌어지는데  만복이 동생 천복이가 말리고 나섰다.

 

천복 :  행님들 왜 그카시능교 잔치집에서?

놀부 :  저 영감태기가 날보고~

몽룡 :  머 영감태기?

놀부 : 날보고 층춘이라 캉기 누군대?

칠성 : 아니 젊다카만  득기 조은 거 아잉가?
놀부 : 머시라? 칠성이 자네까지 날 어이보고!
칠성 : 아직 근력 좋고 농사일도 잘항께 나오는 말이것지!

놀부 : 일 잘하는 건 마자여! 어제 밤만해도~ 그렁께 지금이라도 반만 장만해 조라  ~
몽룡 : 흥 그짓만 잘하만 머하노 앞디가 깡막킨기 청춘대학이나 댕기만~

 

와장창 술잔이 날아가서  뒷말은 들리지 않았다. 급보를 듣고 달려온 춘향이를 따라서 몽룡이는 퇴장했다.  놀부도 분이 풀리지 않는다는 듯 식식거리며 동생 흥부를 따라서 집으로 갔다. 

칠성 : 도대체 이해가 안가여!
만복 : 자들 하루이틀 겪어 봤나? 자주 싸우는 걸!
칠성 : 그건 알지만 청춘이란 말에 왜 그키 흥분하는지 ~
만복 :  청춘학당이라고 모리나?

칠성 :  들어 본것 같아여!
만복 : 예전에는 노인대학 장수대학이라고 하던 걸 요즘은 듣기 조으라고 그렇게 부르자나!
칠성 : 아하!

 

그렇다 젊은 시절 고생만 많이 하신 어르신들 인생 말년 즐겁게 사시라고 마련한 놀이터겸 배움터가 청춘학당이고 청춘대학이다. 그래서 청춘이라는 단어가 놀부에게는 정반대로 들렸던 모양이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화장실 출입도 거북한  사람을 연상했다면 놀부가 화를 내는 것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그러다가 생각이 났다.

 

1997년 그해  그곳 학생들 사이에서는 "영재"라는 말이 최고의 모욕이었다. 중학교 2학년 개구장이 두녀석이 교무실로 불려왔다. 하나는 코피가 터지고 얼굴이 엉망이었다.

--왜 싸왔어?

--자가 날 보고 영재라고 했어요!

--그렇다고 친구를 이지경으로 맹글어?

--재송 함미다!

--자 보고 영재라 캔나?

--얘!

--그만 너도 잘못이 있네!

--잘못 햇슴니다.

옆에서 지켜보던 나는 너무나 황당했다.  그때 옆자리에 앉은 선생님이 귀띔을 해 주셨다. 정상적인 교육과정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몇몇 학생을 따로 모아서  특수학급을 편성했다. 그리고 "영재학급"이라고 듣기 좋게 불러줬다. 그래서 아이들 사이에서는 영재라는 말이 그렇게 들렸던 것이다.

 

--아이구 성님 오늘부터 존대말 쓰겠습니다.

--왜 갑자기?
--그렁께 칠십이면 저보다 세살이나 더~

--나 아직 예순일곱이여, 만으로는 여섯이고 호적상으로는 다섯이고!
--칠순잔치한 만복씨하고 동갑이라캤자나?

--그거 다 뻥이여!
--순 거짓말장이네?
--처음에 밝혔자나 을사년 시월이라고!
--???

--삼년 후에는 청춘이란 말을 들으면 벌컥 화를 낼지도 모른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