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리밭에 줄 긋기
고사리 밭에는 수영장 레인처럼 하얗게 줄을 친 것이 보였다. 그 줄을 따라 앞선 사람 뒤쳐진 사람 대여섯 분이 고사리를 꺾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저렇게 경쟁을 붙이면서 일을 시키다니 너무한 것 아니냐'하는 생각도 들었다. 고사리 작목반 교육을 받을 때 강사분이 보여준 사진 속 풍경이었다. 그런데 강사 선생님 말씀은 그게 아니었다. 꺾은 곳과 꺾지 않은 곳을 구분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앞 사람이 지나간 곳을 뒷 사람이 또 밟을 수밖에 없다고 하셨다. 혼자서 꺾어도 지나온 곳을 확인차 여러번 밟게 된다. 그러면 새순이 올라오는 고사리한테는 치명적이란다. 땅속에 숨어서 안 보이는 새순도 많으니 조심해서 될 일이 아니라고도 했다.
코로나 사태 전에 받은 교육인데 엊그제 갑자기 생각이 났다. 작년 가을에 받아 둔 유기농거름(양지뜰) 10포를 차에 싣고 고사리 밭에 뿌리기 위해 출발하기 직전이었다. 고사리 꺾을 때를 대비하여 줄을 치려면 지금 하는 것이 "도랑치고 가재 잡는 격"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래야 고르게 뿌릴 수 있고 여러 번 밟는 것을 피할 수 있겠다. 여기저기 뒤져 봤지만 흰 끈이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작년에 썼다가 회수해 둔 도막난 끈이 한 포대 있었다. 버리면 쓰레기가 되고 태우면 환경오염이라는 생각에 모아둔 것이다. 이어가면서 하다보니 진도가 영 안나갔다. 오후에는 은척가서 새 끈을 사서 하겠다고 생각하며 반정도 하고 철수했다.
점심을 먹은 뒤 잠시 쉬다가 나와서 자동차 시동을 걸고 보니 지갑을 안 챙겨 나왔다. 벌써 먼지 투성이 작업복에다 장화마저 신었다. 잠시 망설이다가 새 끈 사러 가는 것은 포기하고 뒤뜰 논 옆의 보관소로 갔다. 거기에도 회수한 끈, 조금 더 길게 사린 것이 한 포대 있었다. 잇는 번거로움은 줄었지만 자꾸 꼬이는 걸 푸는 것이 또 힘들었다. 새 것 사면 몇푼 안 드는데 바보짓하고 있다는 생각도 했다. 그래도 친환경 농업인으로서 도리는 다해야 한다고 마음을 달래며 계속했다.
끝내고 집으로 오는데 아지매들이 차를 세웠다. 마을 회관을 수리 중이어서 시내버스 승강장(대기소)에서 몇분이 봄볕을 쪼이고 계셨다. 고사리 밭에 왜 줄을 치는지 궁금하다는 말씀이었다. 고사리 작목반에 배운대로 말씀을 드렸다. 그랬더니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런데 집안 아지매 한분이 참견을 하고 나섰다.
--저건 운제 뿌릴라고?
--낼요! 오늘 할라캔는대 줄치다 보니 모햇서요.
--그만 부롸 났다가 낼 뿌리지 왜 그냥 실고 오나. 내가 봉께 한달도 더 실고 댕기네! 기름은 공짜가?
--아지매도 참 어제 실었어요! 차우에서 살포기에 따루만 매고 일어서기가 헐썩 술하다니까요!
--고사리 발는기 그키 아까우만 비영개 타고 날라 댕기민서 꺽지 그래!
--그걸 이제 갈챠 주시만 우짬니까? 오늘 밤에 아부지 오시만 비영개나 사달라고 졸라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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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아직 유기농 인증은 못받은 상태입니다. 앞으로 인증을 받기 위해 준비중입니다. 이점 오해가 없기를 바랍니다.(3월12일 21시23분에 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