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계신 신부님께
사랑에는 국경도 없고 빈부귀천이 장애가 될 수도 없다고 한다. 하지만 그 것은 어디까지나 교과서에 나오는 말이고 현실은 그렇지 않다. 보잘 것 없는 한 남자가 격에도 맞지 않게 고상한 집안의 딸을 사랑했던 모양이다. 그 여자가 다른 남자와 약혼을 하고 결혼을 며칠 앞둔 어느 날 뺑소니차에 받쳐 다리를 심하게 절게 되었다. 결국 그 여자는 파혼을 당하고, 우여곡절 끝에 자기를 짝사랑하던 그 남자와 혼인을 하였다. 다시 말해서 그 남자는 오르지 못할 나무에 오르게 된 셈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지극한 정성으로 그녀를 아끼며 평생을 살았다.
그래도 죄책감을 이기지 못했던지 어느 날 그 남자는 고해성사를 했다. 다 듣고 난 신부님은 "이 고해성사는 내가 받을 것이 아니고 집에 계신 부인께서 받으셔야 합니다."라고 말했. 그러니까 고해성사를 받을 신부는 성당에 계신 분이 아니고 집에 계신 분이라는 말씀이었다. 집으로 돌아간 그남자가 한평생 간직했던 비밀을 털어 놓으려는 그 순간, 그녀는 집게 손가락을 입술 앞에 세우고 "쉬~잇"이라고 했다.
텔레비젼 드라마에서 본 내용인데 20년도 더 지난 일이라 자세한 내용은 조금 다를 수도 있겠다. 마지막에 그녀가 보인 반응이 무슨 뜻일까 수업시간에 토론을 붙인 적도 있었다. 고해성사도 그렇지만 위문이나 위로도 그렇다. 상대방은 반드시 피해 당사자가 되어야 한다. 불행하게도 당사자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면 그 유가족이 상대방이 될 수도 있다.
그건 그렇고 피해 당사자는 물론 유가족도 참석하지 않은 곳에서 추도식이 열리고 그 추도식에 그분도 참석했다는 소식에 아연실색할 뿐이다. 애도한다는 그 말씀이 진심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