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훈련과 제초작업
산악훈련과 제초작업
땅과더불어
2019-09-09 09:18:08
마치 법무부 장관의 임명 여부를 놓고 고심하시는 그분 같았습니다. 며칠째 장고에 장고를 거듭하시더니 <내일 작전-산악훈련-을 연기한다>고 토요일 저녁에 선언하셨습니다. 마음 속으로 만세를 불렀지만, 사정은 이미 파악하고 있었지만, 표정관리를 하면서 여쭈어 보았습니다.
"왜 그러십니까?"
"동맹국의 혼사가 있기에 부득이 참석해야만 합니다."
"내일 작전을 앞두고 소신은 만반의 준비와 각오가 다 되어 있사옵니다."
"국내 치안과 소득 증대도 중하지만 지도자의 임무는 그게 전부가 아니지요."
"지당하십니다. 해외 순방하면서 외교도 해야 하는 것 소신도 그정도는 알고 있사옵니다. 그래야 유사시에 그들도 우리를 도와 주는 것~"
"내가 없는 동안 내정을 잘 챙겨 주시오"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하루동안 무슨 일을 하면 되겠습니까?"
"그러니까? 음? 고추는 월요일 따면 대고 머라 그냥 푹 시면서 한눈 팔지 말고 대기하시오"
한참 생각하시더니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일요일 아침 조금 일찍 수라를 드는둥 마는둥 그분은 떠나셨습니다. 차를 몰고 가서 시내 모처에서 전세기를 이용하신다고 했습니다. 배웅하고 나서 느긋하게 쉬고 있자니 괜히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휴일인데 쉬지도 못하시고 치열하게 외교전을 벌이고 있을 그분의 행보를 생각하니 더욱 그렇습니다. '그냥 푹 쉬라'는 말씀은 머리 속이 너무 복잡해서 생각이 안나서 한 말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니 그 말을 믿고 쉬는 것은 신하된 자의 도리가 아니니 스스로 일거리를 찾아 나서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낫 한 자루 들고 나갔습니다. 참깨 베어낸 자리에 심은 배추 무 당파 옆에 남은 풀을 베었습니다. 비온 후이고 논을 밭으로 바꾼 곳이라 배수가 원활하지 않아서 질퍽했습니다. 피나 비름 등 길게 자라서 잡기 좋은 풀들만 낫으로 잘라 주었습니다. 아직 고랑에 고인 물이 남아 있는 곳은 그냥 두었습니다. 예보상 기온은 그다지 높지 않지만 무지하게 덮고 땀이 줄줄 흘러 내렸습니다. 비온 후 습도가 높은 탓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두어 시간 하다가 잠시 쉴겸 한바퀴 둘러 보았습니다.
고라니란 놈이 자주 침투하여 심어 놓은 배추를 망쳐 놓은 적이 많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금년 봄에 한 축성공사가 부실이었음을 솔직하게 인정합니다. 어린 배추를 그것도 먹는 것이 아니고 쏙쏙 뽑아서 말라 죽게 만들었습니다. 들깨 골 사이에 조금 심은 쥐눈이콩(서목태)을 잎사귀만 다 뜯어 먹고 줄기만 앙상하게 남겼습니다. 들깨가 한쪽 방향으로 쓰러지지 않고 사방으로 쓰러져 가운데가 아이들 놀이터 처럼 움푹한 곳도 있습니다. 바람 탓인지 개구장이들의 장난인지 알 수 없네요
태풍이 지나간 후 쓰러진 들깨를 보면서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격언도 떠 올렸습니다. 참깨골에 심었던 들깨 그래서 참깨를 베어낸 후 드문드문 남은 것은 전부 쓰러져 수확이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이웃집 감타래 옆의 것도 그렇고 우리 것도 그렇습니다. 다만 소량이라 그리 엄살을 떨지는 않겠습니다. 들깨만 집중적으로 심은 곳은 조금 쓰러지다 만 정도입니다. 잘 자라서 밑둥이 튼튼해서 무사한지 아니면 빽빽하게 서 있어서 서로 기댈 수 있어서 그런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키가 큰 것들 사이에 뭐를 심으면 햇빛을 받지 못하니 제대로 자랄 수 없다고 저는 처음부터 반대를 했습니다. 하지만 "저렇게 골이 넓은데 그냥 두기 아깝다"고 사장님이 우겨서 심었습니다.
오후에는 예초기를 매고 가서 가장자리 풀을 갂았습니다. 일부는 길과 접해 있고 일부는 위의 논(밭)과 이어져 있는데 우리 밭(논)이 낮은 경사면이었습니다. 그런데 지나 다니던 이웃 아지매들이 흉을 봤는지 사장님도 오래전부터 압력을 넣었습니다. 저는 공용 수로(폭 60CM 정도 U관)를 사이에 두고 있으니 저정도 풀은 자라도 지장이 없는 생각에 방치했습니다. 하지만 감독이 없는 때 혼자서 해놓고 생색을 내기에는 이만한 일이 없다는 생각에 해 치웠습니다.
월요일 그러니까 오늘은 고추를 따는 날입니다. 그런데 어제 무리를 한 탓인지 일어 나기가 싫었습니다. 조금 늦게 일어 나서 아침을 먹었습니다. 비가 조금씩 오다 말다 그랬지만 하우스 안이라 고추 따기에는 지장이 없었습니다. 따라 나서려고 하니 오늘은 쉬라고 하시네요. <아이쿠! 내일 산악훈련이 무쟈게 빡시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한심한지도 모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