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더불어

추석을 보내고

임재수 2022. 11. 4. 17:51

 

가족과더불어

2019-09-14 19:44:15


모든 일을 미리미리 챙기고 준비하라는 말씀을 귀에 따갑도록 들으면서 자랐습니다. 하지만 결국 금년 추석에도 "세살 적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옛 어른들 말씀이 이렇게 잘 맞는지 참으로 놀랍습니다. 어쩌면 오늘 저녁에 자다가 종아리를 맞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명절 차례든 기제사든 홀기를 준비해야 질서 있고 엄숙하게 진행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밝힐 수 없는 피치못할 사정(물론 그분의 입장에서는 택도 없는 일이겠지만)으로 차일피일 미루다 팔월 열사흘 저녁 늦게 완성했습니다. 집안에는 인쇄기가 없으니 은자골영농조합법인 사무실로 가지고 가서 뽑을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수색정찰 명령이 떨어져서 작전을 수행하고 나니 오전이 지나갔습니다. 사실 이 작전도 갑자기 있었던 것이 아니니 따지고 보면 모두 게으런 탓이니 변명의 여지가 없는 일입니다.

 

저장장치에 옮겨 담아서 들고 나가려다 혹시나 하고 전화를 했더니 역시나였습니다. 그분도 어느 집안의 며느리이고 명절 준비도 해야 하는데 공무도 아닌 사적인 부탁으로 오라가라 할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손으로 옮겨 적어야만 했습니다. 먼저 내용을 복사해서 <미리 복습하라>는 당부의 말과 함께 가족들께 카톡으로 전송했습니다. 몇번이고 틀려서 새로 쓰기를 반복했습니다. 완벽한 필사는 포기하고 한 가지 항목이 빠져서 줄 그어 삽입한 것으로 끝냈습니다. 동생네 가족이 오고 조카들과 외손자가 기다리니 언제까지 부여잡고 있을 수 없었습니다.

 

저녁 먹고 난 뒤에는 마을 회관에서 열린 향우회에 참석했습니다. 홀기는 물론 축문과 지방까지 미리 써 놓고 나가니 평소와 다르게 마음에 여유가 충만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내손으로 거금을 징수해서 헌납을 좀 했습니다. 남의 0으로 생색만 낸다고 흉보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열아홉을 거두어서 스물을 ~~~~

 

차례 상을 차리면서 익지도 않은 대추 그러니까 먹을 수도 없는 것을 올렸다고 혼났던 작년일도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묵은 대추와 풋대추를 함께 차려 봤습니다. 그리고 감이든 단감이든 제철이 아니라는 생각에 곶감을 올렸습니다. 작년에 우리 손으로 깎아 처마밑에서 건조한 것입니다.

 

이번 차례에는 해외에서 근무하는 둘째만 못 오고 아들 둘과 며느리는 전원 참석을 했습니다. 손자 손녀 다섯 중 둘이 참석을 못했는데 하나는 학위 논문 준비에 너무 바쁘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 다른 사람의 즐거운 명절을 위해서 누군가는 일을 해야 하는>사정이라고 했습니다. 아쉽지만 이정도로 만족을 해야 하는가 봅니다. 

 

세살 난 외손자(저의~)가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절을 하는 흉내를 냈습니다. <이거는 할머니 이거는 할아버지 그리고 삼촌 이모>등을 구분해서 모두들 웃었습니다. 종조모 둘 중 나이가 많은 쪽은 할머니로 부르고 상대적으로 젊은 쪽은 이모로 그리고 막내 종조부를 삼촌이라고 불렀습니다. 나름대로 기준이 명확하니 누군가 "팩트 폭력"이라고 했습니다. 

 

차례가 끝난 후 질녀들 셋을 데리고 부모님 뵈러 늦은목 산으로 갔습니다. 벌집이 있었는데 금초할 때 흙으로 틀어 막았다는 말을 들었기에 먼저 접근해서 확인을 하고 불렀습니다. 넷이 나란히 서서 절을 했습니다.

"다리는 우째 안 왔나?"

"산에 갔습니다"

"여개는 산 아이가"

" 마 그런기 있십니다"

 

출가한 후 첫 명절인 병신년(2016) 추석을 손녀(제 딸)가 친정에 와서 보낸 적이 있었습니다. 솔직히 그 때는 몹시 언짢았습니다. <저러다가 시댁 사람들 눈밖에 나는 것은 아닌지> 불안하기도 했습니다. <명절은 너 가문에 가서 자손된 도리를 다해라>고 가르쳐야 하는게 부모된 도리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냉정하게 처신하지 못했고 그래서 제가 한심하다는 마음이 오랫동안 남아 있습니다

 

제 딸은 시부모님 구존하시고 할머니도 생존해 계신 복많은 집안으로 출가했습니다. 그리고 장남이 아니신 사돈께서는 내외분이 큰댁으로 가서 차례를 모신다고 합니다. 그래서 며느리가 친정에서 명절을 보내도록 가끔 배려를 해주십니다. 어디까지나 아량이 넓으신 분이기 때문에 있는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사돈 어른 내외분께서 우리 딸에게 베푸신 사랑과 배려를 마음에 깊이 새겨 두겠습니다. 그리고 언제가는 맞이하게 될 며느리에게 돌려 주어야 한다고 다짐합니다. 그러면서 이 세상이 조금씩 변하고 발전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