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일상
불장난
임재수
2024. 1. 21. 17:16
오늘 마누라와 밭에서 불장난(?)을 했습니다. 바짝 마른 들깨 줄기 그리고 조금 덜 마른 고추대를 며칠전 갑바로 덮어 두었습니다. 어제 저녁에서 오늘 새벽에 걸쳐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어서 불에 태워 밭을 깨끗하게 정리하려는 생각이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여덟시 쯤 밭으로 갔습니다. 생각만큼 비가 오지 않았지만 바람도 불지 않아서 불이 주변에 옮겨 붙을 걱정은 하지 않았습니다. 덮어 두었던 들깨 줄기를 먼저 모아 놓고 그 위에 고추 대궁을 얹어 불을 붙였습니다. 여기 저기 여러 곳에 불을 붙여 놓고 흩어져 있는 것들을 모야서 불에다 던져 넣었습니다. 활활 신나게 잘도 탑니다. 어린 시절 학교를 오가면서 하던 불장난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때나 이때나 불장난은 여전히 재미가 있습니다. 조금 위험하기는 하지만.
무서운 기세로 타던 불이 점차 잦아지기 시작합니다. 조금 덜 마른 것 흙덩어리와 함께 있는 뿌리 부분은 채 타지 않은 채. 다 타서 꺼질 때까지 기다리려면 시간이 걸릴 것 같아서 폐 비닐을 걷었습니다. 다 걷고 나서도 불은 타는 것도 아니고 꺼진 것도 아닌 상태로 여기 저기서 연기가 솔솔 피어납니다. 그리고 불을 붙일 때는 조용하던 바람이 살랑 살랑 불기 시작합니다. 촉촉하게 젖은 것 같았던 주변이 어느 듯 말라 버린 것 같고 불이 옮겨 붙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결국은 삽을 가지고 와서 모두 흙으로 덮어 버렸습니다. 모닥불이 활활 탈 때는 철부지 어린애처럼 신나고 재미 있었는데 그 뒷감당은 조금 성가십니다. 아무튼 사고치지 않고 불장난을 마무리 해서 참 다행입니다.
철부지 어린 시절의 사랑을 흔히들 “불장난”이라고 합니다. 모닥불처럼 활활 타오르는 뜨거운 사랑 누구나 하고 싶겠지요. 그런데 그 사랑의 모닥불이 자칫하면 자신이나 상대방에게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힐 수 있기에 그런 비유를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뜨거운 사랑이 식고 나면 그 뒷감당이 성가신 것도 오늘 제가 했던 “불장난”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페이스북을 통해서 보는 요즘 젊은 세대들의 불장난이 조금 걱정스럽습니다. 진심이 담긴 사랑이라면 그리고 그 주인공들이 자신의 인생을 책임질 나이라면 당연히 축복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아직 철부지인 중고생들이 00와 연애중이라고 공개를 합니다. 그리고 보기에도 민망한 커플 사진을 올립니다. 남들이 자랑을 하니, 기죽지 않으려고 거짓 자랑을 하고 연출된 사진을 올리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이든 어른들 버젓이 가정을 가진 사람들의 불장난 소식도 가끔씩 접하게 됩니다.
각설하고 불장난은 절대로 하지 맙시다.(2013.11.15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