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일상

앗 나의 실수_먹을 때는 입이 필요 없다

임재수 2022. 11. 4. 17:58

앗 나의 실수_먹을 때는 입이 필요 없다

소소한 일상

2019-11-24 19:59:40


군에서 제대하고 복직한 후 포항에서 근무할 때의 일입니다. 인근에 죽림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포항지역의 포교당 역할을 했고 <포항불교학생회>가 소속되어 있었습니다. 군 복무중 법당에 다니기 시작한 것을 인연으로 토요일 학생법회에 자주 나가게 되었습니다. 임명장도 없었지만 학생회 지도 교사를 자처하고 나섰습니다.

 

여름 방학 중에 경주에 있는 어떤 사찰로 수련회를 갔습니다. 삼박사일인지 자세하지는 않았지만 학생들과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스님들의 수행하는 방식 그대로 바루 공양도 하고 새벽 예불도 했으며, 마지막 날 밤에는 철야 정진도 했습니다.

 

그 중 바루공양을 할 때였습니다. 사실 스님들의 바루 공양이야 말 한마디 없이 죽비신호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지만 학생들의 수련이 어디 교과서대로 됩니까. 소란 스럽고 질서가 없었지요. 공양(식사)이 끝나면 대중공사란 것이 있습니다. 스님께서 먼저 하루 중의 반성이나 훈시 질책 등이 하시게 마련입니다. 우리 가정의 밥상 머리 교육 비슷한 것이지요. 저 보고 하실 말씀이 없느냐고 하시며 발언 기회를 주셨습니다.

 

바루 공양시 분위기가 못 마땅하게 생각했던 저는 일어 나서는 목에 잔뜩 힘을 주고 일장 훈시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여기 저기서 웃음을 참는 요상한 소리가 나더니 학생들이 뒤집어 졌습니다. 저는 진지하게 말하는데 분위기가 엉망이라 갑자기 열이 났습니다. 정색을 하면서 언성을 높이는데 옆에 앉으신 다른 선생님께서 제 바지 가랑이를 당기시는 겁니다.

 

조금 후에야 눈치를 챘습니다. 아이들을 포복 절도하게 만든 말은 다른 말이 아닌 "먹을 때는 입이 필요 없다"였습니다.

페이스북(2012년 12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