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일상

숙제 검사

임재수 2024. 3. 9. 21:14

책장을 뒤지다가 묵은 책 한권을 발견했다. 중학교 2학년때 담임이셨던 문몽식선생님의 시집 [바람은 가고]였다. 선생님의 제자이며 같은 학교에서 근무했던 선배로부터 받은 책이다.  생각해보니 벌써 삼십년이 다 되어 가는 일이다.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몇 장을 넘겼다. 그냥 모셔두기만 했던지 내용이 전혀 생소했다.  "나는 시를 모르니 국어 선생인 자네가 잘 읽어 보시게"라는  당부의 말을 생각하면서 가슴이 뜨끔했다.

사실 명색은 국어 교사였지만 나는 시를 잘 모르는 사람이다. 교과서에 나오는 작품만 지도서나 자습서에 의존해서 전달했을 뿐이다. 다시 말하면 시험에도 안 나오는 작품을 읽어 낼 여유와 능력 그리고 관심마저 없었던 것이다.

그동안 무심했던 자신을 질책하며 오늘에야 다시 책을 펼쳤다. 그 중 [대치고개]라는 시조가 쉽고 가슴에 와 닿았다. 등짐을 지고 대치고개를 넘으셨던 삶의 고달픔이 묻어났다. 배고픔을 참고 60여리를 걸어야만 했던 설움이 담겨 있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을 졸라서 농암장 구경을 간 것이 생각났다. 하지만 나에게 농암장은 새로운 세상에 대한 동경과 달콤한 추억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 [대치고개]와는 닮은 듯하지만 다르다.  

졸업하고 이십몇년 후에 받은 받은 숙제를 다시 삼십년이 지나고 한 기분이다. 아니 이것으로 숙제가 끝났는지 모르겠다. 살아계신다면 찾아 뵙고 숙제검사라도 받아야 하겠다.

대치고개
닭울음에 쫓기듯 허겁지겁 나선 새벽/상주장 육십 리 길 달그림자 앞세우고/주린배 맥없는 걸음 등짐 지고 넘었었네
오르막 열두 굽이 가쁘게 돌아 올라/내리막 서른 굽이 단숨에 내달리던/갑장사 갓바위벽이 몰고 오던 비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