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더불어

알약의 오진

임재수 2025. 5. 4. 15:05

어느날 갑자기 우리집 컴퓨터가 마비되었다. 스마트폰으로 컴퓨터 화면(랜섬웨어 차단 알림)을 촬영하여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댓글이 달렸다. 알약의 오진이니 안전모드로 부팅해서 알약을 제거해야 한다는 친절한 답변이었다. 가르침대로 시도했지만 실력 부족이었다. 안전모드 부팅을 기다리다 지쳐서 밖으로 나왔다. 잠시 다른 일을 하다가 몇 시간 후 들어가도 그냥 그대로였다.

어쩔 수 없이 윈도우를 재설치하기로 했다. 설치용 디스크를 찾아내고 전화로 카톡으로 서울에 있는 아들과 연락을 취했다. 현직에 있을 때 정보부장을 오래 한 사람이지만 그놈의 세월 앞에서는 '별무소용'이었다. 설치용 디스크(USB메모리)로 부팅해서 C디스크 파티션 날리고 분할하고 포맷하고 설치화일을 복사해 오는 등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싶었다.

다시 부팅이 되고 응용 프로그램 설치 단계에서 나는 그만 절망하고 말았다. CD를 착각해서 포맷하고 윈도우를 설치한 곳은 자료가 저장 되어 있는 D였던 것이다. 물론 외장하드를 준비해서 가끔씩 자료를 옮겨 놓기는 했다. 그래도 최근 몇달간 생성된 자료는 몽땅 날아가고 말았던 것이다.

C에 남아 있는 응용프로그램 그대로 사용할 수 있을 줄 알았지만 그것도 착각이었다. 운영체제와 응용프로그램 재설치 등 장시간에 걸쳐 원시적인 노동이 또다시 반복되었다. 한 이틀 정도 잠자는 시간 빼고는 오로지 거기만 매달린 것 같았다. 옆사람 눈치가 보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포맷과 동시에 날아간 자료가 얼마나 많은지도 모르겠다. 한마디로 말해 오진의 피해는 참혹했다.

그건 그렇고 어느날 갑자기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군대를 동원해서 국회와 선거관리위원회 등을 침탈하고 여야 정치인 지도층 인사들을 체포구금 하려다 실패를 했다. 방송 카메라 앞에서 탄핵심판정에서 "반국가 세력 척결"을 강력히 주장했다. "빨갱이" "간첩" "부정선거"라는 끔찍한 단어을 수없이 반복했다.

이번 계엄은 오진의 결과임이 분명하다. 물론 사람인 이상 오판을 전혀 안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대통령의 오진은 있어서는 안 된다. 국민을 사지로 몰아 넣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통령의 결단은 더더욱 신중하고 정확해야 한다. 혼자서도 고민하고 각료나 참모들의 자문도 받아야 하며 국무회의 등의 공식적인 절차도 거쳐야 한다. 그런데 그런 고민이나 절차를 거친 흔적이 어디에도 없다.

오진이 아니고 고의라는 견해도 있다. 나는 뭐 거기까지는 믿고 싶지 않다. 아무튼 계엄으로 마비된 국정이 정상을 되찾고 국민 모두가 단잠을 자려면 "포맷 후 재설치"를 하는 수밖에 없다. 그것만이 정답이다. 내일의 파면선고를 간절히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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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4월3일에 완성하여 "경북 상주 작가들의 [자선 대표 작품집]"에 보냈던 글입니다. 책의 출간과 함께 공개를 합니다. 작품집 간행에 애쓰신 고창근 작가님께 고맙다는 인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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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약의 오진"20228월에 있었던 일이고 24년4월 5일 페이스북에도 올렸던 내용입니다
https://www.facebook.com/limjaesu/posts/pfbid024J1zDEWRn1yCgDENP3Sxp1qiUPmLgpxFMGqhs68CNijkxbJjYb723ffPbgQHvDzJ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