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과더불어

옷샘 추위

임재수 2022. 11. 4. 17:30

옷샘 추위

웃음과더불어

2019-03-23 20:59:13


고여사는 요즘 신바람이 났다. 일년에 한번 만나는 동창들과 1박2일 봄나들이 간단다. 남해안 삼천폰가 어디로 가서 유람선도 타고 케이블카도 탄단다. 회도 먹고 소주한잔 걸치고 노래방에도 간다고 했다. 모두들 세 곡씩 준비해 오라는 명을 받았다며 스마트폰 틀어놓고 일주일째 노래 연습중이다. 

화사한 봄옷도 한벌 샀다. 그동안 백화점과 아웃도아 그리고 홈쇼핑과 인터넷 사이트를 수도 없이 뒤지고 다녔었다. 그러나 그뿐 눈요기로만 끝난 것이 몇년째인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두 눈을 질끈 감고 거금 삼십만원을 질렀다. 사실은 고여사의 간덩이가 부은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며느리와 딸 그리고 친정 여동생까지 가담한 읍소와 협박에 마지못해 허락을 하고 말았던 것이다.


다음날 택배로 온 옷을 보고는 고여사 입이 함지박만하게 벌어졌다. 옆에서 보기에도 참 이뻤다. 역시 젊은 사람들 안목이 한 수 위라고 구두철씨도 감탄을 했다. 고여사는 얼마나 좋은지 자다가도 일어나 옷을 꺼내 입고 거울 앞에 서곤 했다.  코홀리개 시절 명절을 앞두고 그랬던 추억을 떠올리며 구두철씨는 못 본 척했다. 그동안 '내가 너무 무심했다'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마저 들었다. 


그런데 정말로 무심한 것이 하늘이라고 하겠다. 아니 무심한 정도가 아니라 심술궂다고 해야 딱 맞는 상황이 도래했던 것이다. 며칠전부터 일기예보가 수상하더니 출발 하루 전날 아침 기온이 영하로 떨어졌다. 비행기 타는 것도 아니고 태풍이 오는 것도 아니니 가지 못할 상황은 아니었다. 다만 거금을 주고 마련한 이렇게 이쁜 옷을 입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저녁에 짐을 꾸리면서 새로 산 봄옷과 겨울옷을 모두 꺼내 놓고 고여사는 투덜거렸다. 

"나하고 무슨 원수가 졌나 이놈의 0쌤~"

"시방 머라캐써?"
"머~얼"
"이놈 다매"

"오쌤 추위"

"그려 참으로 고약한 꽃샘 추위다 그치?"

"옷샘 추위랑께"

"거기 무신 마리고?"

"거금 주고 산 내 새옷 몬닙구로 해방논께  옷샘추위지 머야"
"아하 그러쿠나!"
구두철씨는 그만 무릎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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