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비이락
웃음과더불어
2018-08-25 23:26:23
그 시절 우리 친구들 중에는 선생님들의 입을 빌려 표현하면 "대00만 믿고 공부는 죽으라고 안 하는 것들"이 좀 있었다. 바지의 넓이나 머리 깎는 방식 등 외모부터가 남다른 점이 있다고 했다. 물론 그렇게 지적하는 선생님들의 생각이셨고 우리의 판단은 좀 다르다고 하겠다.
2학년 되고 나서 첫 시험인 것으로 기억한다. 고사성어였지 싶은데 구체적인 것은 모르겠고 교과서에 없는 문제가 하나 나왔다. 시험이 끝나고 첫 수업 시간에 친구들 중 하나가 <안 배운걸 왜 내느냐>고 항의를 했다. 선생님이 전체를 대상으로 물어 보니 배웠다는 친구들과 안 배웠다는 친구들이 거의 반반이었다. 모범생 친구들 몇 사람의 공책을 가지고 나오라 해서 점검해 보니 분명히 적혀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승복(?)을 하면서도 <교과서에도 안 나오는 걸~>이라고 또 다른 하나가 투덜거렸다. 그러자 선생님이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바로 너 같이 수업 시간에 딴 짓만 하는 사람들 때문이다. 시험때마다 이번처럼 책에 없는 것 딱 한개씩 낼끼다. 앞으로 계속"
평소 수업태도 좋지 않은 사람을 가려 낸다는 명분 아래 수업 시간 중에 옆길로 새는 듯한 이야기 속에서도 시험문제가 나왔다. 하지만 선생님의 그 방식이 그리 효과적이지 않았다는 것이 지금의 판단이다. 요즘처럼 내신 성적이란 것이 없었던 탓도 있었으리라고 추측한다. 자습서가 있고 사전과 옥편도 있으니 시험때만 벼락치기 공부를 해도 별일은 없었다. 교과서에 안 나오는 2~3점짜리 한 문제에 목숨을 걸 사람이 별로 없었던 것이었다.
그래도 어떤 친구들은 시험이 가까워지면 그 범생들의 노트를 빌려 공부를 했다. 열심히 놀기는 했지만 점수는 많이 받고 싶은 것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인지상정이리라. 우리의 사인방도 그랬다. 그 덕에 시험때가 되면 공책정리 잘하는 몇몇의 입은 호강을 했다. 첫시험 후 선생님께서 범생들의 공책을 보여준 것이 역으로 그들에게 출구를 가르쳐 준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2학기 늦가을의 수업시간이었다. 사자성어 <오비이락(烏飛梨落)>이 나왔다. 여기서 선생님의 수업이 또 옆길로 빠졌다. 선생님께서 학창시절에 다른 친구들이 적었던 기상천외의 오답이야기를 끄집어 내셨던 것이다. 재미 있는 이야기에 우리는 모두 허리를 잡았고 한 시간의 수업이 언제 끝난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그리고 2학기말고사였다. "<오비이락>을 한자로 써라"는 문제가 나왔다. 그런데 그 시절 잘나갔던 <사인방>친구들이 있었다. 그날의 수업시간에는 또 한눈을 팔았고 그래서 또 모범생의 공책을 빌려 벼락치기 공부를 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 결과가 그만 우리를 또 한번 엄청 웃기고 말았다.
친구 갑돌이는 烏飛梨落이라고 맞게 썼다. 을수는 吾悲爾樂으로 병식이는 五飛二落으로 적었다. 정대는 烏飛梨落을 포함해서 吾悲爾樂 吳非李樂까지 적었다. 수업시간에 선생님께서 잠시 옆길로 샜던 이야기를 모범생 무철이가 거의 완벽하게 노트를 했고 그것을 보고 공부한 세 친구가 그만 헷갈렷던 것이었다. 시험후 끼리끼리 답을 맞추어 보다가 정답을 확인한 을수가 무철이를 원망했다.
"씰데 엄는 걸 왜 저거 났어?"
"앞에다 X표 해 돘자나?"
"어디?"
"바 여기"
무철이가 내민 노트에는 烏飛梨落 빼고 다른 것들 앞에는 전부 X가 붙어 있었다.
병식이도 한마디 했다.
"우리가 사준 빵 내나"
"야~ 거 그 그건~"
당황한 무철이가 말도 못하고 버벅거리는데 지켜보던 경태가 한마디 보탰다.
"병시가 정낭 가바라"
"정낭이 먼데"
"똥시깐"
"거는 왜가?"
"다 머거서 똥대쓰이~"
그 순간 또 한번 교실이 떠나갈 듯 웃음이 터졌다.
"에라이 순~"
그 때 정대가 나섰다.
"무철아 농담잉께 겁내지 말거라"
"병시가 순진한 범생 겁주만 안댄다"
정대가 한마디 하자 무철이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러면서 무철이도 한마디했다
"야, 내를 우얘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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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순전히 허구임을 밝혀 둡니다.
오답으로 나왔던 사자성어 오비이락의 풀이를 올립니다.
吾悲爾樂 : 나는 슬픈데 너만 좋다고? (변심한 애인을 찾아가서 애원반 협박반 ~)
五飛二落 : 다섯 마리는 날아가고 두마리는 (맞아) 떨어졌다. (일곱마리 참새가 전깃줄에 앉아 있는데 포수가 총으로 쏘았더니)
吳非李樂 : 오씨가 아니고(엉뚱한) 이씨만 즐겁다. (애써 마련한 선물을 남학생 오모군에 줄려고 했는데 잘 못해서 이모군에 전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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