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과더불어 52

하얀면사포

1979년 9월이었다. 당시 30사단 신병교육대 정훈병은 점심시간만 되면 "하얀 면사포"란 노래를 방송해서 갓 입대한 훈련병의 가슴을 후벼팠다. 두고온 고향산천 그리고 어머님과 어린 동생들을 생각하며 눈물께나 흘렸다.별다른 사연도 없는 평범한 나도 그러했는데 울면서 매달리는 "까노죠"를 두고 들어온 동기가 있었다면 얼마나 심란했을까? 그래도 수료할 때까지 탈영이나 자살 소동은 없었으니 다행이라고 하겠다."병사들 심란하게 왜 하필 그 노래냐" 하고 제지한 간부가 왜 없었을꼬 하고 생각하다가 그 노래를 찾아 보니 그해에 나온 신곡이었다.

추억과더불어 2025.04.15

봉사활동

스물한살 때인 1976년 여름방학 때였다. [흥사단 대구아카데미]의 구성원으로 봉사활동을 간 곳은 동구 범물동이었다. 명색은 대구시지인데 전기도 없었다. 그러니까 내고향 가리점과 비슷한 두메 산골이었다. 20번(?) 버스를 타고 지산동 종점에서 내려 한 시간 정도 걸어 가야하는 마을이었다. 범물분교(아마 본교가 지산국민학교)에서 교실 두간을 모두 차지하여 숙식을 해결했다. 분교장이었던 선생님(성함?)께서 주민들과 우리를 이어주고 이끌어 주셨다. 땅을 파서 물탱크도 만들고 수도관을 묻어서 상수도를 설치했다. 물론 마을 주민들과 함께 일을 했다. 마지막에 꼭지를 돌리자 물이 펑펑 쏟아졌다. 그 순간의 감격은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다. 선배단우들이 말씀하신 것처럼 땅을 파고 지게질을 하면서 노동의 소중함을 알..

추억과더불어 2024.12.25

가보와 갑오(년)

짓고땡, 두장삐, 구삐 등 도박성 화투놀이에 아홉끗을 두고 '가보'라고 했다. 화투 만지면(누군가 고자질 하면) 학교가서 벌을 서야만 했던 열살 전후부터 사용한 말이다.2부터 8까지는 두끗~여덟이라고 해서 우리말 수사하고 비슷하다. 그런데 0은 망통 1은 따라지 9는 가보라고 불렀는데 숫자(고유어)와 연결이 쉽게 안 된다. 너무 약해서 실망스러운 것 그리고 최고로 좋은 것만 따로 이름을 붙인 것일까.그런데 추석 전날밤 고향을 찾은 사람들이 회관에서 한판 붙었다. 향우회를 시작하기전 먼저 온 사람들이 기다리는 동안 시간을 한정하고 벌이는 연례행사(1년에 딱 두번)였다.그러다가 갑자기 생각이 났다. 1954년이 갑오년이었다. 마지막 숫자 5와 4를 합하면 9가 된다. 가보는 갑오(년)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추억과더불어 2024.09.18

달리기

언젠가 학생들의 성적표를 교실에 게시한 초등학교선생님이 뉴우스에 보도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분은 참 많은 비난을 받았습니다. 어린 학생들의 마음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다는 것입니다.그런 의견에 의문을 제기할 생각은 없지만 도저히 제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성적표를 붙이는 것은 그렇게 비난 받을 일이고 부모 형제는 물론이고 온 동네 이웃 사람이 다 모인 운동회날 어린 아동들에게 달리기 시합을 시키는 일은 잔인한 짓이 아니냐고 묻고 싶습니다. 이쯤하면 여러분은 눈치 챌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한 마디로 힘도 없고 몸놀림도 둔합니다. 그래서 달리기를 하면 항상 꼴찌에서 1,2등을 다투었습니다. 그러니 가을 운동회만 다가오면 밥맛이 떨어지고 잠을 제대로 이룰 수 없을 지경이었습니..

추억과더불어 2024.09.12

라디오와 텔레비전

유싱개(유성기)를 들어 본 적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어디서였는지 어떤 노래였는지 전혀 기억이 없습니다. 발 들이밀 틈조차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꽉 들어찬 방안, 네모난 상자 위에서는 뭔가 빙빙 돌아가는데 그 상자 옆에 달린 뭔가를 손으로 돌리면 가느다란 노래 소리가 들렸습니다. 요즘도 듣는 왜정 시대의 노래와 분위기가 비슷했습니다.초등학교 입학을 전후한 시기라고 짐작이 됩니다. 큰집에 라디오가 생겼습니다. 구형 도시락만한 크기의 트랜지스타인데 한마디로 경이로움 그 자체였습니다. 손가락 굵기의 건전지가 들어갔는데 건전지 소모량이 너무 많아서였는지 나중에는 선을 뽑아 내 크고 넓적한 밧테리를 연결하고 고무줄로 칭칭 동여 매었습니다. 조그만한 상자 속에 사람이 들어 있을까? 그 사람들은 잠은 잘까? 밥은..

추억과더불어 2024.08.16

악몽과 같은 사격

그 시절 사격은 나의 자존심을 처참하게 짓밟아 버리는 악마와 같은 존재였다. 물론 달리기를 비롯해서 모든 운동에 둔하기에 가을운동회가 다가 오면 며칠전부터 잠이 오지 않았던 사람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사격장 근처에는 시궁창 비슷한 곳이 있었다. 빗물이 고인 웅덩이라고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겠다. 사격이 있는 날은 아예 속옷(메리야스)를 입지 않고 출정했다. 황토물이 스며들면 그 속옷은 세탁에 아무리 공을 들여도 허사였기 때문이었다.불합격자들을 웅덩이 앞에 일렬로 세워 놓고 놓고 조교(고참)은 명령을 하달했다. . 오줌을 내깔리고 그 웅덩이 속으로 우리는 포복 전진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렇게 치욕적인 일은 M60기관총 사수가 되어 소총을 반납하면서 겨우 끝이 났다.파리 올림픽이 시작되고 사격에서 메달 획..

추억과더불어 2024.08.03

가짜 보리밥

아무리 봐도 페친 Pom-yong Choi께서 올리신 보리밥은 가짜 냄새가 진하게 풍긴다. 왜냐 하면 반찬이 무려 아홉가지나 되기 때문이다.내가 아는 보리밥은 달랑 된장 찌게 하나만 나와야 진짜다. 거기에도 무우 이외의 것이 하나라도 더 들어 가면 안된다.그리고 보리밥에는 쌀이 한 톨도 섞이면 안 된다. 새까만 보리밥 그래서 가난이 부끄러운 선배 누나들 그리고 동급생 지0바들은 점심을 먹을 때 벤또 뚜껑으로 가리고 먹었다.머 머라구요? 보리쌀이 쌀값보다 훨씬 더 비싸다구요? 에이 거짓말 하지 마소! 누굴 숭막 치급하시는거요!페친 최범영박사님이 올리신 보리밥 사진보기

추억과더불어 2024.06.24

딸따기

얘들아 나오너라 딸따러 가자 /장갑끼고 양푼들고 청재산으로오르막 길섶에 가시풀 속에 / 손으로 딸 따서 양푼에 담자 ([달따러 가자]-윤석중-가사 바꾸기)청재로 올라 가는 길 섶에 잘 익은 딸이 보였다. 달이 아닌 해를 따고 내려 오다가 따서 담았다. 집에 가서 양푼과 장갑을 준비해서 다시 오려다가 맨손으로 땄다. 조금 찔리고 약간 따끔거리기도 했지만 예전에 다 해 보았던 일이 아닌가.양푼 대신에 저렇게 꼬깔 만들어 담았다. 그때는 망개 잎을 따서 담은 것으로 기억하는데 오늘은 이름도 모르는 나뭇잎으로 대신했다. 집에 와서 상납을 하니 한두개 먹고 그만 두신다. 뒤안에 양딸을 심어서 따먹었다는 분 입에는 맞을 리가 없을 것이다.그런데 이제는 저거 따먹을 개구장이가 마을에 없다. 저렇게 잘 익은 것 얻어 ..

추억과더불어 2024.06.01

오디를 먹다가

까마득한 어린 시절 관에서 오디를 수매한 적이 있었다. 다래끼(바구니)에 따 담아서 가지고 갔지만 가격이 얼마인지 실제로 돈을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이장님댁 마당에 멍석 깔아 놓고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수매가 끝나면 인분과 썪는다는 말이 있었지만 역시 본적은 없다. 그 맛있는 오디를 그 더러운 것과 썪는다니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었다.우리마을 뽕나무는 거의 대부분이 보리밭 속에 있었다. 그리고 보리와 오디는 익는 시기도 같았다. 누렇게 익은 보리밭에 들어가 오디를 따 먹다가 보리 까끄래기가 목에 걸려 캑캑거린 기억이 난다. 그 무시무시한 고통(병원에 갈 정도가 아니니 엄살?)은 겪어본 사람만이 알것이다.딱 십년전에 여러 가지 묘목과 함께 왕오디 5그루도 사다 심은 적이 있었다. 고서방인지 노서방인지 어..

추억과더불어 2024.05.24

읽을거리

읽을거리 그 시절 읽을 거리는 교과서밖에 없었다. 아참 한 가지 더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것도 교과서다. 아홉살 위의 누님께서 사용하셨던 국민학교 교과서다. 작년에 올렸던 동시 "유리창에 호호 입김으로 흐려 놓고 ~"도 거기서 읽었고 "지옥 탈출의 유일한 끈 파 한 뿌리" 이야기도 거기서 읽었다. 조금 뒤 그러니까 3~4학년 무렵 동화책 백여권이 황송하옵게도 산골분교에 납시었다. 불을 때면서(쇠죽 끌이기 위해)도 틈틈이 읽었다. 아니 책에만 정신이 팔려서 아궁이 밖으로 불이 번져 나오는 것도 모르는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알리바바와 사십인의 도적(열려라 시무시무!) 알라딘의 요술램프 등도 그때 읽은 것으로 기억한다. 읍내에 있는 중학교에 들어가니 완전히 별천지였다. 학교 도서관에는 만여권의 책이 천지사..

추억과더불어 2024.0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