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과더불어 52

총기는 개뿔~

오랫동안 못 보던 친구를 동기회에서 만났다. 페이스북에서 내 글 잘 읽고 있다는 말을 했다. 5십년도 더 지난 일을 어찌 그리 자세히 기억하느냐는 감탄이었다. 글의 내용에 대한 구체적인 평가를 기대했지만 없어서 안타깝기도 했다. 코흘리게 시절 총기가 좋기로 온동네 소문난 칠성이었다. 대여섯 살 때 우리 가족은 물론 할매 큰아부지 큰엄마 생일까지 줄줄이 다 읊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이것 저것 물어 보면서 혀를 찼다는~ 친구1 : 그렁께 자내는 치메 걱정 읍겠어! 칠성 : 내가 말이야 총기가 좋다고~ 친구2 : 그거 다 필요읍당깨. 친구1 : 먼말? 친구2 : 어릴 때 일만 잘 기윽하만 얻다 쓰나? 어재 한 것도, 아니 한 시간 즌애 일도 기역 모하민서~ 칠성 : 그래 니 잘났다!

추억과더불어 2024.03.13

사흘의 열정

해마다 삼월이면 동그라미를 그리고 하루를 조각조각 나누어서 책상 위에다 붙이곤 했다 며칠도 못가서 흐지부지 중도무이 작심삼일이 되고 말았지만 자와 콤파스를 들고 철없는 아우들이 그날의 나처럼 각오를 다질 때 한발 물러서서 한심한 눈초리로 바라보기만 했었다.. 작심삼일 그것마저 안하면 사흘의 열정 그것마저 없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 2014년 3월 4일 페이스북과 카카오스토리에 올더니 군살이 너무 많다고 했습니다. 줄이려고 하니 마음에 안 드는 곳도 참 많습니다. 뭐라구요 다이너마이트가 아니라고요? 그냥 대충 넘어갑수다. 다~다 다이~ 작심삼일 해마다 삼월이면 생활 계획표를 짜서 책상 위에다 붙이고 다짐을 하곤 했다. 며칠 못가서 흐..

추억과더불어 2024.03.03

담배꽃

담배꽃이 저렇게 고운 줄 예전엔 몰랐습니다. 2년간 담배농사를 지은 적도 있지만 담배 꽃을 본 기억이 아예 없습니다. 아참 담배농사는 아버님 지으셨고 저는 여름 방학때만 나타났습니다. 따 놓은 잎담배 지게로 져 날랐습니다. 새끼줄로 엮어 놓은 것 건조대에 올라가서 달았습니다. 분탄에 찰흙 섞어 반죽해서 불도 피웠습니다. 다른 일은 모르고 그것마저 48년 전 아버님께서 별세하시면서 끝났습니다. 저 사진으로 보면 개화시기는 6월 말이네요. 여름 방학은 7월 말부터 시작되었으니 그때는 꽃을 볼 수 없었을 것 같습니다. 무성한 잎을 따기 위해서 꽃이 피기 전에 모든 순(곁순 포함)을 잘라 주어서 꽃을 피우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꽃이 있어도 일에 지치고 바쁜 제 눈에 안 보였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나를 보..

추억과더불어 2024.03.02

눈오만

--머? 눈오만 휴무였다고? --그시절은 그랬지! --삽들고 빗자루 들고 눈 치우러 안 갔어? --분수리(대대 소재지)에서 광탄 면소재지까지 2차선 도로 싹 치왔지! --힘 안들었슴미까? --교육훈련에 비하만 식은 죽 먹기여! --그래 맞아, 교육 훈련 때하고 달리 막걸리도 한잔 걸치는 여유가~ --긍께 공부가 싫었군요 --원체 약골이라서 너무 힘들었지. --ㅉㅉ 저런 약골을 가방끈 길다고 무조건~ --맞아, 사람은 각자 쓰임새가 다 있는데 --참으로 맞는 말씀이지만, 나머지 공부 악착같이 시킨 샘께서 그런 말씀하시면 안되지요. --뉘신지요? --00중학교 00회 졸업생입니다. --그게 다 너~ 너를~ 미 미안*(&^$~

추억과더불어 2024.02.27

40년전의 악몽

호주와 8강전을 갖게 되니 40년 전의 악몽이 떠 올랐다. 뮌헨월드컵 최종 예선전 1차전(원정경기)에서 비기고 2차전(홈경기)도 비겼다. 제3국에서 치른 3차전에서 1:0으로 패배해서 좌절하고 말았다. 그런데 다들 9년전의 패배를 손홍민 선수가 설욕하였다고 보도한다. 이거 뭐야 나만 구닥다리 세대가 되는가? 우승까지 가자! ========= 생각해보니 지역 예선이 열렸던 1973년은 자취하던 주인댁에 텔레비전이 있어서 예선전 내내 구경을 했었습니다. 그 전 해만해도 주변에 없어서 볼 기회가 없었습니다. 펠레가 소속된 브라질 산토스팀을 초청해서 친선경기가 열릴 때도 만화방 가서 봤지 싶습니다.

추억과더불어 2024.02.19

둔한 사람

내가 근무하던 시골 중학교에 인쇄기가 들어온 것은 1985년도(전입3년차) 2학기도 한참 지났을 무렵이다. 전역후 복직발령을 받았던 P고교에는 벌써 있었던 것이니 3년이상 늦었던 것이다. 시험지원안 육필로 쓴 다음 결재 받고 다시 필경을 해야만 했던 처지에서 벗어났다. 학습 자료 만들기도 식은 죽먹기니 신명이났다. 지문을 오려 붙이기 위해서 시내 책방에서 헌 교과서도 사왔다. 서점과 출판사에는 죄송한 이야기지만 홍보용으로 나온 문제지를 오려 붙이기도 했다. 학생들 입에서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물론 그 비명의 성격은 사람마다 달랐을 것으로 추측한다. 얼마인가 시일이 지나고 사전 결재를 얻은 후 인쇄를 하라는 지침이 내려왔다. 그래도 나는 열심히 만들었다. 악필이었기에 지금까지 겪었던 처지를 생각하면 결재..

추억과더불어 2024.02.05

달리기와 나머지

오늘도 달리기 시합을 했다. 보나마나 꼴찌였다. "호는 집에 가서 놀아" 일등을 한 항호는 기고만장해서 소리치며 돌아 갔다. "은이는 2등이지만 열심히 노력해서 다음에 일등을 할 수 있도록" 은이는 나를 보고 씩 미소를 짓고 사라졌다. "수야 임마 너는 못하면 잘할려고 노력해야지, 오늘 집에 가지 말고 계속 연습해야 되" "아이 씨 해도해도 안 되는 데요" 그러면서 옆을 쳐다 봤다. 그런데 아무도 없다. 응원하러 따라 나섰던 마누라도 할머니도 "이게 다 임마 너를 위한 거야" 선생님께서 알밤을 딱 먹이신다 눈을 떠 보니 모두들 잠이 들어 세상이 고요하다. 몇년전까지 나머지는 아이들을 다스리는 유일한 무기였다. "지금부터 걸리는 사람은 나머지 하기다." 약삭빠른 아이들은 몸조심한다. 지금까지 한 두번 지적..

추억과더불어 2024.01.23

그림솜씨

어린 시절 나는 그림을 잘 못 그렸습니다. 그런데 그 못 그리는 이유는 내 손재주가 없는 탓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그림을 그리는데 자와 컴파스를 이용했습니다. 길다란 사다리꼴 기와지붕을 그리고 반달처럼 생긴 초가지붕을 그렸습니다. 그리고 색칠을 하는 과정에서 조금 마음에 안 들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그림을 그렸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중고등학교 미술시간에는 이럭저럭 지내고 미술에 대한 관심을 가져 본 일이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20여년전 그림 그리는 프로그램이 등장했습니다. 386 컴퓨터에 도스를 이용하던 시절인데 잡지(PC라인?)에 실린 광고를 본 나는 흥분하고 말았습니다. 아, 나도 이제 그림을 잘 그릴 수가 있겠구나! 그래서 나는 거금(?)을 주고 그 프로..

추억과더불어 2024.01.23

현명한 소비

초등학교 2학년인가 3학년 때였으리라 짐작한다. 한창 수업을 듣고 있는데 이웃 마을 친구 어머니(할머니?)께서 들어오셨다. 손에는 톱과 망치 등의 연장이 들려 있었다. 선생님께서 연유를 물었다. 아들(손자?)의 연필이 교실 마룻바닥 틈새로 빠졌는데 꺼내야 한다는 말씀이었다. 선생님께서 잘 말씀 드려 그냥 돌아가셨다. 아마도 “제가 그 연필 대신 사주겠습니다.”라고 약속이라도 햐셨는지 모르겠다. 워낙 궁벽한 산골이었고 모든 물자가 귀했던 가난한 시절의 이야기였다. 여름철 도랑 건너다 고무신 한 짝 떠내려 보내면 마루 밑이 어느 구석에서 떨어진 헌 신 한 짝 찾아내어 짝짝이 신발을 신고 다녔었다. 오래 만에 미술 수업한다고 예고된 날, 막상 준비물을 제대로 갖춘 학생이 별로 없어 한숨만 쉬던 선생님께서 한참..

추억과더불어 2024.01.21

풍선 이야기

어린 시절 무척 가지고 놀고 싶었던 것 중 하나가 고무풍선이었다. 어쩌다 하나 생기면 애지중지했다. 불면 터질세라 만지면 닳을세라 조심스럽게 불었다. 그러나 아무리 조심을 해도 이삼일 지나면 터지게 마련이었다. 빵 터지고 나면 얼마나 속이 쓰리고 아까웠던지 울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 시절에는 우리 동네에도 점빵(가게집)이 있었는데 4절 정도의 빳빳한 종이 위에 여러 가지 풍선이 그리고 밑에는 번호표가 달려 있어서 뽑기 형식으로 구입했었디. 그 가게집 주인은 나에게는 당숙아저씨였는데, 가끔 부모님 심부름을 가면 덤으로 과자 하나씩 얹어 주셨다. 과자 대신에 고무풍선 하나 주시면 참 좋겠는데 마음 속으로만 생각하고 말은 하지 못했다. 가끔 오는 엿장수 아저씨들의 지게 위에도 고무 풍선은 있었고 부모님 따라 ..

추억과더불어 2024.0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