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과더불어 52

과방이란

내가 어린 시절에는 큰일(소상이나 대상 혼인이나 회갑잔치 등)을 모두 집에서 치루었다. 하루 종일 손님을 받았는데 집이 좁았으니 마당에 멍석깔고 채알(차일)을 치고 손님 접대를 했다. 그것도 모자라 이웃집(서너 집정도) 방까지 징발했다. 접대용 상이나 식기는 동네 공용(세를 내고 사용했다고 들었음)도 있었지만 각 집의 것을 거두어서도 사용했다. 나도 가가호호 거두고 다니는 심부름을 한 적이 있다. 손님 상에 오르는 안주 접시에는 아주 다양한 것들이 올라간다.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면서 밑에 깔리는 것이 배차적이다. 그 위에 돼지고기(수육) 과일이나 과자 등이 올라간다. 크지도 않은 접시위에 여러 가지가 올라가지만 양은 별로 많지 않았다. 적은 양으로 고르게 썰어서 담고 이쁘게 차려내야 하니 아무나 할 수..

추억과더불어 2022.12.10

차면 안 되는 공

2학년 때인지 3학년 때인지 모르겠다. 산골분교에 공이 생겼다. 쉬는 시간 우리는 신나게 차고 놀았다. 수업을 하시던 선생님께서 창문을 열고 [그것은 발로 차는 공이 아니라]고 말리셨다. 세상에 발로 차면 안 되는 공도 있느냐고 모두들 고개를 갸우뚱했다. 나중에 생각하니 아마도 농구공이 아니었나 싶다. 그 이후로는 이런 방식으로 경기를 했다. 양쪽 진영 끝에 적당한 원을 그려 놓았다. 그 가운데 자기편 선수가 한 사람 서 있다. 상대방의 수비를 뚫고 원 가까이 와서는 가운데 서있는 선수에게 공을 던져서 받으면 1득점이었다. 공격수든 수비수든 그 원안으로는 들어가지 못했다. 가운데 서있는 선수는 발을 떼지 못했다. 말하자면 농구 골대 역할이었다. 월드컵에 출전한 우리 선수들 선전을 기원하다가 갑자기 옛날 ..

추억과더불어 2022.11.25

범띠가시내

범띠가시내 추억과더불어 2021-12-31 22:35:51 딱 두 시간이 남았다. 그러면 또 한 해가 가고 새해가 찾아 온다. 시간의 흐름에 시작이 어디 있고 끝이 어디 있느냐는 말도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성현의 기준이다. 나같은 중생이야 가는 해가 아쉽기도 하고 다가 오는 해에 새로운 기대를 걸기도 한다. 그러니 망년회라는 것도 있고 신년회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벌써부터 임인년이라고 호들갑을 떤다. 하지만 나는 신축년이 아직 한달 더 남았다고 생각한다. 국립천문우주연구원 홈페이지를 보라고 하는데 옆에서 누군가 빈정대는 듯하다. 임인년은 범띠의 해라고 한다. 범띠라고 하니 "범띠 가시내"라는 노래가 생각난다. 1970년도에 나온 같은 이름을 가진 영화의 주제가라고 한다. 1972년 고등학교 첫 소풍..

추억과더불어 2022.11.04

모의점수와 강수확률

모의점수와 강수확률 추억과더불어 2021-12-26 16:05:35 고3때 수학은 교장선생님께서 직접 가르치셨다. 얼마나 수준이 높았는지 몇 달 지나고부터는 대부분의 친구들이 포기를 하고 각자 알아서 공부를 했다. 수학 시간에 수학공부를 하는데 수업 중인 교재와는 다른 책을 놓고 공부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대입 모의고사를 치루면 많은 학생들이 0점을 받았다. 내가 한 문제라도 풀어서 0점을 면한 기억은 딱 두 번 정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지만 불확실하다. 동경물리학교 출신이라 그곳 입시가 끝나면 곧바로 받아서 우리한테 출제하셨는 말들이 있었는데 내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채점이 끝난 모의고사 시험지를 보니 참 이상했다. 어떤 것은 0점이 표시가 되어 있고 전혀 채점이 안 된 시험지(답안지가 따로 없..

추억과더불어 2022.11.04

알밤을 주워서

알밤을 주워서 소소한 일상 2021-09-28 11:56:21 그때를 아십니까? 이게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요즘은 무엇이든지 돈 주고 사는 시절입니다. 하지만 예전에는 반두깨미 살면서 저렇게 수저를 만들었습니다. 물론 숟가락 손잡이도 풀대궁 꺾어서 끼웠지만 오늘은 볼펜 심으로 편법을 써봤습니다. 워낙 손재주가 없어서 그것도 겨우 해냈습니다. 이틀에 걸쳐 알밤을 주웠습니다. 앞산 골짜기 밤이 제법 많았습니다. 그저께 주운 것은 벌레가 많이 먹었다고 핀잔을 들었습니다. 그래도 굴밤과 섞어서 묵을 만들면 된다고 이웃집에서 조언을 하자 며칠 전에 주운 굴밤과 함께 물에 담가 두었습니다. 그래서서 어제는 색이 선명한 것만 골라서 주웠습니다. 예전 같으면 게으런 사람에게 돌아올 턱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부자가 ..

추억과더불어 2022.11.04

불필요한사람

불필요한사람 추억과더불어 2021-02-28 21:32:48 큰어머니께서 사시던 큰집을 인수하여 살고 있다. 그 옛날 많았던 골동품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고 남아 있는 것이라고 해야 이런 것이다. 군불도 때야하고 밭에서 나는 여러 가지 찌꺼기도 태워야 한다. 그러니 아직도 불이 필요하다. 토씨 하나만 빼고 나면 불필요한 사람으로 오해를 살 수도 있다. 그러고 보니 의사이며 금연운동가인 서홍관시인이 "불필요한 사람"이라는 시를 남겼다. 페이스북에서 만난 박상률작가님이 소개한 시를 옮겨서 소개한다. 불필요한 사람 / 서홍관 작 중풍을 맞아 불편한 몸을 이끌고 동창회에 나타나더니 나보고 말한다 “나는 불필요헌 놈이여...” 나는 친구를 달랬다 “네가 왜 불필요하겠어? 필요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 ”아니 ..

추억과더불어 2022.11.04

비영개와 나

비영개와 나 추억과더불어 2020-11-28 15:32:51 --저 비영개에 사람 들언나? --그럼! --내 주먹맨치로 자근대? --하도 멍께 작기 보이여! --그만 얼매나 크여? --야들 누야 시집갈 때 탄 가매보다 크여? --산판할 때 낭쿠 실고 댕기던 재무시보다 크대여! 2학년땐가 친구들과 주고 받던 대화였다. 한 학년 위의 선배가 나서면서 대화는 끝이 났다. 하지만 나는 '말도 안대여'라고 말하려다 말았다. 내가 태어나고 자랐던 가리점은 그만큼 첩첩산중이었다. 자동차 구경은 못했지만 비행기 구경은 자주 했다. 6학년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버스도 구경하고 기차도 타 봤다. 그리고 스물하고도 세살 되던 해에 비행기를 탈 기회가 있었지만 그냥 포기를 하고 말았다. 그 두 가지 이야기와 사정은 이미 다른 ..

추억과더불어 2022.11.04

라면 이야기

라면 이야기 소소한 일상 2020-08-29 22:18:39 라면을 처음 먹어 본 것은 열 세살 되던 해 그러니까 1969년이었다. 그 때 나는 혼자 부모님 곁을 떠나서 상주읍 초산리에 있는 이모님 댁에서 생활했었다. 거기서 만산리에 있는 중학교까지 왕복 6키로 정도를 걸어 다녔었다. 어느날 학교 수업을 마칠 무렵 아버님께서 학교로 찾아 오셔서 잠시 만나고 가셨다. 그때 저녁 삼아 사 주셨던 걸로 기억한다. 정말 어찌나 맛이 있었던지 지금도 그 느낌은 생생하지만 말이나 글로는 표현할 재간이 없다. 그 다음 해부터는 만산리 박00씨댁에서 친구 전00와 한 방에서 자취를 했는데 학교와는 울타리 개구멍을 사이에 두고 있었다. 그리고 아주 가끔씩 밥 대신에 큰맘 먹고 라면을 끓여 먹은 적이 있었다. 한봉에 20..

추억과더불어 2022.11.04

소리없는노래

소리없는노래 추억과더불어 2020-08-03 12:07:59 중학교 3학년 소풍때인 것으로 기억난다. 아무튼 그 비슷한 학교 행사 때 선생님들의 노래를 돌아가며 들은 적이 있었다. 그해에 새로 오신 염00선생님께서 마이크를 잡으셨다. 요즘 초현실주의 다시 말하면 쉬르리얼리즘 이런 것이 대세다. 미술은 선이나 색이 표현 도구이고 음악은 소리가 수단이다. 그런데 21세기가 되면 이런 가장 기본적인 상식이 무너지는 예술이 출현할 것이다. 소리가 안 나는 노래(음악)도 그 하나인데 내가 보여주겠다. 뭐 이런 말씀을 하시고 난 뒤 노래를 부르셨다. 입만 벙긋 노래를 부르는 시늉을 하시니 우리는 폭소를 터뜨렸다. 그리고 거의 오십년이 되었고 21세기가 도래하고도 20년이 지났다. 그런데 요즘 우리 외손자가 그 소리..

추억과더불어 2022.1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