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과더불어

비영개와 나

임재수 2022. 11. 4. 19:02

비영개와 나

추억과더불어

2020-11-28 15:32:51


--저 비영개에 사람 들언나?

--그럼!

--내 주먹맨치로 자근대?

--하도 멍께 작기 보이여!

--그만 얼매나 크여?

--야들 누야 시집갈 때 탄 가매보다 크여?

--산판할 때 낭쿠 실고 댕기던 재무시보다 크대여!
2학년땐가 친구들과 주고 받던 대화였다. 한 학년 위의 선배가 나서면서 대화는 끝이 났다. 하지만 나는 '말도 안대여'라고 말하려다 말았다.

 

내가 태어나고 자랐던 가리점은 그만큼 첩첩산중이었다. 자동차 구경은 못했지만 비행기 구경은 자주 했다. 6학년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버스도 구경하고 기차도 타 봤다. 그리고 스물하고도 세살 되던 해에 비행기를 탈 기회가 있었지만 그냥 포기를 하고 말았다. 그 두 가지 이야기와 사정은 이미 다른 글에서 했으니 여기서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고 넘어 가련다.

 

비행기를 탈 수 있었던 두 번째 기회는 군 복무중에 있었다. 전역을 얼마 남겨 두지 않은 시점이었다. 우리 부대가 <공중기동훈련>에 투입된다고 거의 매일 헬기 탑승 훈련을 했다. 1개 분대씩 헬기를 타고 전투가 벌어지는 지역에 투입되었다가 철수를 하는 상황을 전제로 진행이 되었다.

 

여행도 관광도 아닌 전투 연습이었다. 1개분대를 2개조로 나누어 한조가 사주 경계를 하면 다른 조가 뛰어 가서 올라 탔다. 뒤이어 경계를 하던 조도 올라 타면 출발한다고 했다. 착륙을 하면 먼저 내린 조가 십여(?) 미터 달려가서 납작 엎드리고 주위를 경계를 하면 뒤이어 다른 조가 뛰어 내렸다. 물론 총을 들고 타고 내려야 하는데 헬기 근처에서는 무조건 총구를 아래로 돌리라고 했다. 그래서 달려 가는 도중에 총구를 뒤집고 바라하고 그랬다. 헬기의 핵심이 프로펠러 근처에 있으며 혹시 있을지 모르는 오발 사고에서 헬기가 추락하는 불상사는 막기 위해서라고 했다.

처음에는 연병장에 그림을 그려 놓고 연습을 했다. 헬기 모양의 평면도(?)에 꼬리도 있고 출입문도 그려 놓았다. 며칠이고 연습을 하는데 영 실감이 안났다.

'이건 머 어린애 장난도 아니고'

누군가 투덜거렸다. 그런데 마지막날에는 진짜 헬기기 왔다. 아뿔싸 그런데 실제 헬기는 힘이 엄청나게 더 들었다. 땅바닥보다 훨씬 높은 곳을 오르내리니 죽을 맛이었다. 입에는 단내가 났고 '어린애 장난'하던 옛날이 정말로 그리워졌다.

실물을 타고 내리는 훈련은 딱 하루뿐이었다. 그 다음날 작전이 무기 연기되었다는 소식이 들려 왔고 12월 중순 나는 전역을 했다. 쎄빠지게 연습만하다가 날아 보지도 못한다고 후임들이 부러움 섞인 위로를 건넸다. 그리고 몇년 뒤 후임 하나를 길에서 우연히 만났다. 1월인가 한겨울에 작전을 수행했다고 들었다.

"임병장님 말도 마이소 엄동설한에 헬기 문도 안 닫고 이동을 하는데 동태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십여년 뒤 상산고등학교에서 근무할 때 세번째 기회가 찾아 왔다. 전입 3년차에 2학년 담임었는데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게 되었다. 그런데 출발 하루를 앞두고 그만 일이 생겼다. 아침부터 화장실 들락날락 하다가 출근 대신 적십자 병원으로 갔다. 이질이라고 상태가 심하다고 해서 입원을 했다. 나이 드신 옆자리 환자분들이 "그것도 병이라고" 빈정거리는 눈치였다. 아무튼 산골출신 처음으로 비행기 한번 타보나 잔뜩 기대를 했건만 세번째 희망도 허무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병원에서 하루밤 자고 난 뒤 그 다음날 오후 늦게 퇴원을 했다. 학생들이 제주도에 도착해서 여관에 여장을 풀었을지도 모르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또 7년뒤에는 진짜로 비행기 타 봤다. 그 이야기는 하지 않으련다. 왜냐 하면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대부분 타 봤으니 재미 없을 것 같으니까.


스물 세살에 비행기를 타려다 포기한 이야기
www.facebook.com/limjaesu/posts/1988828941193527


처음으로 버스와 기차를 탄 이야기
www.facebook.com/limjaesu/posts/616413365101765

처음으로 비행기 타고 간 제주도(???)
제주도 못간 담임을 위해서 아이들이 사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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