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이야기
소소한 일상
2020-08-29 22:18:39
라면을 처음 먹어 본 것은 열 세살 되던 해 그러니까 1969년이었다. 그 때 나는 혼자 부모님 곁을 떠나서 상주읍 초산리에 있는 이모님 댁에서 생활했었다. 거기서 만산리에 있는 중학교까지 왕복 6키로 정도를 걸어 다녔었다. 어느날 학교 수업을 마칠 무렵 아버님께서 학교로 찾아 오셔서 잠시 만나고 가셨다. 그때 저녁 삼아 사 주셨던 걸로 기억한다. 정말 어찌나 맛이 있었던지 지금도 그 느낌은 생생하지만 말이나 글로는 표현할 재간이 없다.
그 다음 해부터는 만산리 박00씨댁에서 친구 전00와 한 방에서 자취를 했는데 학교와는 울타리 개구멍을 사이에 두고 있었다. 그리고 아주 가끔씩 밥 대신에 큰맘 먹고 라면을 끓여 먹은 적이 있었다. 한봉에 20원이었지만 50봉들이 한 상자를 사면 900원 밖에 된다고 짝궁이 무척 입맛을 다시곤 했었다. 집에서 가져온 쌀로 라면을 바꾸어서 먹고 모자라는 만큼은 굶었다는 전설도 있었지만 누구였는지 몇끼를 굶었는지 확인할 수는 없다.
그때 우리는 무명(목)으로 된 교복을 사서 입었는데 양복지(모직)로 맞춘 교복을 입었던 유일한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달걀 후라이를 덮은 도시락을 싸 왔다. 그리고 가끔씩 찐 라면도 담아 왔다. 꼬불꼬불한 라면이지만 사각형의 모습이 그대로 살아 있었고 라면 국물도 별도의 병에 담아 온 것 같은데 그것은 좀 불확실하다.
그리고 삼년 후에는 우리도 라면을 많이 먹을 수 있었다. 8~9교시 수업을 마치고 늦은 저녁에 집에 오면 라면 삶아서 아침에 남긴 찬 밥 말아서 먹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국수를 섞어서 삶기도 하고 김치나 콩나물 등을 식은 밥과 함께 넣어서 갱시기를 끓여서 먹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은 라면 스프의 그 독특한 맛에 질리고 말았다.
몇 년 동안 라면이 보기도 싫었는데 다시 맛있게 먹은 것은 군복무시절이었다. 처음 자대 배치를 받았을 때는 독립된 중대였다. 소대별로 양동이 서너 개 들고 가서 밥과 반찬을 타와서 각 내무반에서 개인에게 배식을 했다. 라면인 경우에도 그런 방식으로 했으니 항상 불어터진 라면만 먹었다. 그것도 마지막에 받는 쫄병은 더더욱 심했다. 그래도 맛은 있었다. 가끔씩 취사장에 라면 까는 사역을 나갔는데 라면 스프 몇 개씩을 보너스로 받아 왔다. 그것을 국에 타서 먹기도 하고 밥 위에 뿌려서 비벼 먹기도 했다.
고참들은 가끔 내무반에서 끓인 라면을 안주 삼아 소주를 마시기도 했다. 어쩌다 한 젓가락(정말로 딱 한입) 얻어 먹은 적이 있었다. 아! 열 세 살 처음 먹어 볼 때 바로 그 맛이었다. 두 단계 배식을 통해서 먹는 라면과는 비교가 안 되는 맛이었다. 그 날 이후 고참들이 라면을 먹을 때면 안 보는척 엿보면서 군침만 삼켰다.
그런데 어느날 기회가 왔다. 바깥 초소 근무를 교대하고 들어 오니 고참들 두엇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를 보고 라면을 끓이라고 했다. 동이에 물을 떠 와서 반합에 물을 따르고 난로 위에 얹었다. 분탄 난로였지만 마침 화력이 좋아서 금방 끓었다. 갖다가 바치니 먹기 시작을 했다. 인정머리 없는 고참들 중에도 양심이 고운 사람이 있었다. 너도 좀 먹어 보라는 말에 딱 한번을 사양하고 젓가락을 들고 덤볐다.
그런데 갑자기 전화기(무전기?)가 울렸다. 불침번이 받더니 "5분 대기조 비상"하고 고함을 질렀다. 단독 군장으로 튀어 나가서 차량 탑승을 하고 한 바퀴 돌았다. 실제 상황이 아니고 훈련 상황이었던지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무반으로 들어 오니 라면도 불어 터졌고 고참들도 더 이상 마실 기분은 아니었으리라. 나를 보고 갖다 버리라고 했다. 할 수 없이 버리면서도 너무 아까워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12월 중순에 전역하고 이듬해 삼월에 복직 발령 받을 때까지 고향마을에서 지냈다. 기나긴 겨울밤이라 비슷한 또래가 모여서 라면 내기 화투를 가끔 쳤다. 그전에 있던 개인 점빵이 없어지고 동네 부녀회에서 구판장을 운영했던 시절이다. 건물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어서 순번제로 돌아 가면서 했다. 그런데 사 갈 때와 같은 값만 받고 라면울 공짜로 삶아 주었다. 요즘 기준으로 보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또 다시 라면이 싫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