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맞은 산초
소소한 일상
2018-09-20 23:59:18
그해에는 산초를 따러 열심히 다녔다. 그런데 손질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적당히 마르면 파란 껍질이 벌어지고 검은 알맹이가 보인다고 했다. 그때 물을 살짝 뿌려 촉촉해지고 난 뒤 두드리면 껍질은 부서지지도 않고 알만 빠진다고 했다. 그런데 그게 들은대로 되지 않았다. 안 벌어지는 게 너무 많았다.
그래서 바짝 마른 후에 손으로 파란 (마른 후에는 약간 검은 빛으로 변했지만) 껍질이 부서질 정도로 손으로 비볐다. 줄기에 가시가 있으니 손이 찔리지 않도록 말리기 전에 줄기를 제거했다. 그러고 나니 부서진 껍질과 줄기 속에서 알맹이를 골라 내는 일이 어려웠다.
선풍기를 약하게 틀어 놓고 위에서 조금씩 흘렸다. 알맹이는 아래로 떨어지고 티끌들은 좀더 멀리 날아갈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결과는 실패였다. 두 가지가 구분 없이 같이 떨어졌다. 물에 담궈 봤다. 가라앉는 것과 떠 오르는 것으로 나누어질 것이라는 추측이었다. 역시 실패였다. 모두 함께 물위로 둥둥 떠 올랐다.
그제서야 이웃집 아주머니께서 하셨던 말씀이 생각났다. 한창 따러 다닐 때 "바람 맞은 것 따면 기름도 안나온다"는 말씀이었다. 따기 전 파란 껍질을 까 보기는 했다. 제법 단단한 까만 색의 알이 들어 있었다. 그래서 잘 여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만의 착각이었다. 까만 알갱이를 깨물어 보고 숱가락으로 눌러 부수어 보니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았다.
제대로 여물지 않으니 햇볕에 말려도 벌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속이 비어 껍데기처럼 가벼우니 바람에 날려 보고 물에 띄워 봐도 소용이 없었던 것이었다. 학교에서 배운 물리학적 상식은 쓸모가 없었다. 들깨를 섞어 기름을 짜면 된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면 들기름에서 산초 향기는 나지만 산초껍질이 흡수를 해서 들기름이 도리어 줄어든다는 견해도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 해에 율수리 저수지 둑으로 가보니 부지런한 이웃집 아저씨가 먼저 수확하고 남은 것이 없었다. 길도 그리 험하지 않고 차량으로 가까이 다가갈 수 있어 따기 좋다고 눈도장을 찍어 두었던 곳이었다. 원래 내 것은 아니었으니 아깝지만 어쩔 수 없다고 마음을 달랬고 그때부터 산초따러 다니는 것도 그만 시들해지고 말았다.
그해인가 그 다음해인지 집 안 언덕에 심어 놓은 한 그루가 이제는 제법많이 자랐다. 금년에도 바람 맞은 것만 달리면 잘라 버린다고 벼르던 참이었다. 조상님들 산소에 금초하는 날 대구서 오신 당숙모님께서 보시더니 잘 익었으니 며칠 후에 따면 된다고 하셨다. 그래서 지난 16일(?) 일에 땄다. 그리고 19일에는 486번지(고사리밭)에 저절로 난 나무에서도 수확을 했다. 내일은 709번지(두릅밭)에도 가 봐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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