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11일 집안에 있는 포도를 땄습니다. 5년전 이웃집 아저씨가 심고 남은 다섯 다섯 그루를 주셔서 심었던 것입니다. 너무 달게 심었다는 판단에 작년에 두 그루를 베어 내고 남은 것이 세 그루입니다. 농사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 흔히 있는 과욕입니다.
여름에 시원한 그늘을 지우겠다는 생각에 사람의 키보다 높게 키우려고 합니다. 곧게 자랄 수 있도록 부목을 세우고 잡아 매 주었습니다. 작년에는 줄을 연결해서 그것을 타고 사방으로 순이 뻗어 나갈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줄이 끊기고 자라는 순과 줄을 묶어 주는 시기도 놓치고 말았습니다. 돌보는 주인은 형편없는 수준인데 여러 송이 달려서 제밥 잘 익었습니다.
한 소쿠리 따서 두어 송이 씻어서 맛을 보는데 벌레가 한마리 슬슬 기어 다녔습니다. 평소 다촛점 렌즈는끼고 돋보기까지 준비해 다니는 내 눈에 이런 것이 잘 보이니 참 이상한 일입니다. "고기까지 먹으라고?" 농담겸 핀잔을 주었더니 "친환경 무농약의 증거"라는 응답이 돌아 왔습니다. 듣고 보니 그럴 듯해서 사진으로 동영상으로 증거를 남겼습니다. 외손자 주려고 냉장고에 넣다가 묘목을 주신 이웃집 아저씨 생각이 나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자 옆사람이 두 송이를 손에 들고 배달을 했습니다. 외손자가 어제 왔는데 소중하게 보관했던 포도는 깜박 잊고 먹이지 못했습니다. 오늘 저집으로 가고 나니 생각이 납니다. 기억력도 한심한 수준입니다.
사족 한마디 붙이겠습니다. 심어만 놓고 관리도 제대로 하지않았으면서 맛있는 포도를 맛보니 치열하게 농사 짓는 누군가에게 죄송하다는 생각이 갑자기 듭니다. 이 글을 읽는 분 중에 농사를 만만하게 보는 일이 절대로 없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