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더불어

봄은 멀었지만

임재수 2022. 11. 4. 22:36

봄은 멀었지만

세상과 더불어

2022-03-27 23:22:00


같은 방에서 기거하던 친구가 갑자기 탈이 나서 응급실에 실려 갔다. 두 사람 모두 부모 곁을 떠나서 자취를 하던 처지였기에 동행해서 옆에서 지키고 있었다. 위급한 순간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더니 한숨 돌리고 나자 간호원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아주아주무 이쁘고 최고의 이상형처럼 보여서 가슴이 두근두근 오만가지 상상을 다 했단다.

 

몇 시간 후 교통사고 환자가 응급실로 실려 왔다. 뒤이어 연락을 받은 가족도 나타났다. 그리고 잠시 후 교통사고 환자는 숨을 거두었다. 망자의 가족(아마도 아내)에게서 오열이 터져 나왔다. 세상 모두가 잠든 시간임을 의식한 듯 꽉 다문 입에서 흘러 나오는 설움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서럽게 들렸고 듣는 사람의 심장을 갈기갈기 찢어 놓는 듯했다.

 

참다 못해 잠시 자리를 피하려고 하다가 봤다고 했다. 응급실 내이지만 작은 칸막이가 쳐진 곳이었다. 그 간호원이 다른 동료와 함께 소근소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킥킥 웃음 소리도 사이사이 섞여 나왔다. 물론 들릴듯말듯 아주 조심스러운 웃음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만 정이 딱 떨어지더라고 했다.

 

20대 학창 시절에 겪었던 이야기라고 천사가 악마로 변하는데 몇 시간밖에 안 걸리더라고 이야기를 끝내자 누군가 대신 변명하고 나섰다. 종합병원 응급실에 근무하면 죽는 사람 매일 볼터이니 감정이 무디어지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냐고 했다. 듣고 나서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

 

이번에는 내 이야기다. 어머님께서는 세상 떠나시기 전 요양원 신세를 졌다. 그리고 우리 육남매는 가끔씩 어머님을 핑계로 모였다. 사람도 알아보지 못하고 누워만 계시는 어머님 잠시 뵙고 먹으러 갔다. 엄마만 빼놓고 우리끼리만 갔다. 입맛이 뚝 떨어져야 마땅거늘 이것저것 맛있는 것이 너무 많아서 죄송했다. 부모의 마음과 자식의 마음이 이렇게 다르다고 누군가 말했다.

 

여기저기서 봄꽃 사진들이 올라온다. 역병이 창궐하니 봄은 아직 멀었건만, 봄꽃이 너무 예쁘고 그래서 미안하. 그러다가 생각들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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