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과더불어

카메라는 농기계

임재수 2022. 11. 4. 17:02

카메라는 농기계

땅과더불어

2018-09-07 14:06:31


외손자가 학교에서 돌아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방을 매고 걷는 모습이 어째 기운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평소 기운이 펄펄 넘치던 애가 오늘은 어깨가 축져진 것이 좀 이상했습니다.

 

"화니야 왜 그래, 학조에서 무슨 일 있썬니"

"몰라, 할부지하고 인제 안 노라여!"

"기 무선말이고?"

"카메라는 긍께 선생님께서 농기게가 아이래"

"머머머~"

 

순간 머리가 띵해졌습니다. 저는 들에 갈 때 카메라를 꼭 들고 갑니다. 혹시 빠뜨리면 옆에서 꼭 챙겨 줍니다. 그때 저는 "우리집 농기계 일번을 빠뜨리면 안 대지"하면서 받아 들고 나갑니다.

"화니야, 그러니까 그거는 말이다. ~, 저어기~"

"따따따 따따따 주먹손으로 따따따 따따따 나팔 붑니다.~"

그러던 차에 전화가 울립니다.

잠시 기다리라는 시늉을하고 전화를 받았습니다.

", 임재수라고 함니다"

", 환희 외할아버지 되십니까?"

", 그렇소만"

", 화니 담임입니다?"

"아이구 그렇습니까? 어린거 매끼노코 찾아 뵙지도~"

"저 화니가 카메라를 농기계라고 우겨서~"

"아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어쩐지 기운이 쭉 빠져 가이고 들어 오길래 물어 밧더니 ~"

"농사 짓는 기계를 돌아가면서 하나씩 예를 들었는데 환희 차례에 <카메라>라고 해서, 아이들이 교실이 떠나갈 듯 웃고 저도 억지로 참았습니다. 잠시 후 아이들을 진정시키고 환희한테 설명을 들어 보자고 했습니다."

"잘 하시씀니다."

"환희 말이, 우리 할부지는 들에 가실 때마다 카메라를 들고 가신다, 농기계 일번이다 이런 말을 했습니다"

"농기계 일번이란 거는 농담 삼아 한기고, 그러니까 매일 카메라 들고 댕기는 건 그날 일한 성과를 다시 말하면 풀 깍고 물 빼고 가지 치고 씨 뿌리 등 일체를 사진으로 찍어서 보고를 합니다."

"아니 도대체 누구한테~"

"아 누구긴 누구겠습니까. 옆사람이지요"

"아니 화니 외할머니 한테?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머 그렁기 이씀니다. 다 말씀드릴 수는 읍고, 손자놈한테는 카메라는 농기계가 아이다 선생님 말쓰미 맞다고 말해 노케씸더"

", 알겠습니다."

그러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난 뒤 고개를 들어 보니 옆 사람 표정이 참 묘하게도 일그러졌습니다.

"아니 머 나한테 보고 할라고 카메라를 들고 댕긴다고요? 화니 담임샘이 나를 어찌 생각하실꼬?"

순간 제가 실언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지요. 어찌 수습을 해야 할지 난감해 하다가 전화기를 찾아 들었습니다.

"그럼 전화를 다시 해서 오해 업께 설명해 드려야지"

통화기록을 찾아 누르려고 하는 순간

"대써요 그만. 다시 설명하면 도루 더 이상하지. 어이그 내가 몬 살아"

벌떡 일어나더니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조금 후에 서류봉투를 하나 들고 나왔습니다.

"화니야 여개 한분 일그바"

"인증서"

"그래 이게 친환경인증서란 건데 먼지 알지"

"응 우리 지베서는 농약 안쓰고 몸에 조은 농사 진는 다는거"

"어이그 내 새끼 참 똑똑도 하지"

"그럼 누구 손잔데"

"그런데 화니야 우리가 모메 조은 농사 짓고 있다는거 세상 사람드리 아라 줄까?"

"그래서 이 인증서란게 잇자나"

"얼마 전에 살충제 친 양계장 테레비전에 나온거 밨지?"

""

"이거 있어도 세상에는 몬 민는 사람들 아주 마나여"

"그럼 우째만 대는데?"

"응 밭에서 일하는 모든 거를 사진 찍어서 세상 사람들한테 직쩝 비 주는거야"

"! 그러쿠나"

"그럼 화니 니가 낼 학조 가서 선생님께 잘 설명 드려"

"~~"

"머라고 말할지 여개서 한번 해바"

"우리 할매는 사람들 모매 조은 친항경 농사를 짓슴니다. 풀약도 안쓰고 소느로 직접 풀을 뽑습니다. 인증서라는게 이써도 몬민는 사랃들이 만타고 함니다. 그래서 할배는 들에 갈 때마다 카메라를 들고 감니다. 사진을 찌거서 주만 할매는 그걸로 세상 사람에게 자랑한다고 합니다."

"어이구 잘했다 짝짝짝

옆에 있던 나도 그만 신이 나서 박수를 쳤습니다. 만족한 표정을 짓던 옆사람도 한마디 했습니다.

"그래 잘했다. 니 할배보단 헐 낫다"

그러면서 저를 힐긋 쳐다보았습니다.

 

병구 : 오늘 머했노?

 : 들깨 논 예초기로 맷따.
병구 : 이 무더위에?
을수 : 친환경 농산가 먼가 사람 잡겠다.
 : 어제는 고사리 밭에서 물노리항께 할만 하더라. 오늘은 두 시간 바께 안 해써.

병구 : 그런데 니 손자가 밋살이노?
 : 갑자기 그건 왜?

병구 : 카메라를 농기게라고 우깃다며 ~

 : 그걸 우째 아노?

병구 : 니가 올릿자나?
 : 그거 아직 미완성인데 올라간나?
병구 : 그래 여기 바라

 : 좀더 쓰고 고칠기 마는데 찐맛 읍게 댔다. 우리 외손자는 15개월 지났다
갑식 : 지난번에 고등까 다닌다 캣자나
 : 응 그캤지 웃자고
갑식 : 그기 어데 인는 학죤데
 : 사진과네 잇는 학죠야

갑식 : 그럼 카메라를 농기게라 우깃다는 이야기도~
 : 순전히 뻥이야

갑식 : 실읍는 놈
 : 그래도 재미는 이떠냐?
을수 : 순전히 뻥 가태도 그 속에는 꼭 하고 시픈 말이 잇자나?

갑식 : 그기 먼데?
을수 : 어이그 둔하긴 농약 안 치고 친환경농사하고 있다. 마이 팔아 달라 이거자나. 맞지?
 : 응 그걸 머 내 이브로는 말 몬해여
갑식 : 그럼 대노코 말해야지
을수 : 그러만 누가 바여. 은근히 보일 듯 말 듯 그게 묘미야

 : 친항경 농산물 먹는 사람만 좋은 거는 아니야

을수 : 농사 진는 가정에 주변 환경을 파개하지 안는다 이 마리지?
 : 잘 아는구만 어쩐 일이고?

을수 : 그 이야기 하도 마이 드러서

갑식 : 아마 구십분만 더 들으만 백번 댈끼다

 

 <2018 상주동학농민운동기념문집>에 실었던 것을 조금 수정하고 보완해서 올립니다.

 

 

참고 웃자고 다니는 외손자 이야기는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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