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과더불어

동해안나들이

임재수 2022. 11. 4. 17:46

동해안나들이

이웃과더불어

2019-07-30 10:33:15


구가 아닌 산골 마을도 무지하게 더운 날
 있기만 해도 땀이 줄줄 흘러 내리는 날

대서인 23일 아침에 출발해서 영덕에서 하룻밤 자고 울진-봉화를 거쳐서 돌아 왔습니다. 들깨 모종은 이미 끝났고 익은 고추를 수확하려면 아직 조금 더 기다려야 하는 때였습니다. 가리점마을 뜻이 맞는 일곱 사람(다섯 집)이 함께 어울렸습니다. 그냥 숙소에서 그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면 술도 축나고 사람도 축이 날 것이라는 의견에 낚시를 하기로 했습니다. 상주 이마트 근처 낚시점에서 장비를 구입했습니다. 그리고 동상주나들목으로 진입하여 고속도로를 타고 청송휴게소에서 잠시 쉬고 영덕나들목에서 내렸습니다.

 

강구 어시장에서 회를 시켜서 점심을 먹고 난 뒤 숙소를 찾아 여장을 풀었습니다. 그리고 장비를 챙겨 바닷가로 나갔습니다. 남정네 두 사람이 각각 두 대의 낚시를 던졌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입질이 시작되었고 한꺼번에 두 마리를 낚아 올렸는데 어린 복어였습니다. 신명이 났지만 아무나 요리를 할 수 없는 것이라 인증샷만 찍고 방생을 했습니다. 그리고 삼녀와 일남이는 물에 들어가서 놀았습니다. 저는 뭐 카메라 들고 따라 다녔습니다. 처음에 같은 곳에서 놀 때는 이쪽저쪽 다 촬영을 했는데 집에 와서 보니 이남이 사진은 별로 없었습니다. 삼녀와 일남이가 장소를 이동하면서 저도 같이 따라 움직인 탓인 것 같습니다. 미녀들 쪽으로 마음도 기우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동해 바닷물은 참으로 깨끗했습니다. 저는 들고 있는 카메라가 신경이 쓰여서 신을 벗고 바지는 걷어 올리고 다녔지만 다른 일행들은 옷 젖는 것에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바위에 붙은 조개(홍합??)를 칼로 따내고 골뱅이(고동?)도 주웠습니다. 동전만한 게도 잡았는데 요놈들은 아주 빠르게 움직였습니다. 남해안 금당도에서는 갯펄을 슬슬 기어 다녔는데 여기서는 잡으려고 하면 금방 바위틈으로 숨었습니다. 집게로 손을 찝으면 얼마나 아픈지(?) “~~” 비명 소리가 자주 들려왔고 그것은 한 마리 잡았다는 즐거운 신호이기도 했습니다. 제일 젊은 막내 새댁의 입에서는 비명 소리가 잠시도 끊이질 않았습니다. 동작이 빨라서 제일 많이 잡은 것인지 아직 동심이 남아 있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 구석구석에 남아 있는 쓰레기를 보면서 양심을 버린 것이라고 혀를 끌끌 차고 탄식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거기서 펫트병 세 개를 주워서 씻어내고 노힉물을 담았습니다. 데치고 볶아서 저녁에 안주도 하고 아침 반찬도 했습니다. 다만 낚시로 잡은 것은 양이 너무 적어서 그냥 방생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묵은 숙소는 강구면 금진리에 있었는데 강구항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정도의 거리였습니다. 건물 두 채가 남북으로 나란히 붙어 있고 동쪽으로 긴 데크가 놓여 있는데 그 다음(아래)에는 텃밭과 숲이 이어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래로 해안 도로와 해수욕장이 있었습니다. 데크에 앉아서 이 모든 풍경을 한눈에 굽어 볼 수 있었으니 오랜만에 분에 넘치는 눈호강을 누렸습니다. 거실과 데크 사이도 유리로 되어 있기에 먼 바다 풍경은 누워서도 보였던 것 같았고(???) 출입문을 함께 열어 놓으니 맞바람이 쳐서 무더위가 싹 가시는 듯했습니다. 냉방이 싫은 사람은 방에서 자고 나머지는 거실에서 자자고 내가 제안을 했습니다. 열시쯤 나는 방으로 들어가서 잤는데 거실에서도 결국 냉방을 켜지 않고 잤다고 했습니다. 다만 모기한테 시달리다 다시 일어나 소탕 작전이 있었고 내가 자는 방에도 뿌려주는 기척이 있었지만 나는 관계없이 잘 잤습니다.

 

그날 저녁과 다음날 아침은 직접 지어서 먹었는데 해안 풍경을 내려다 보며 먹고 마시고 그야말로 신선놀음이었습니다. 아침을 차릴 때는 구름이 끼어서 더운 줄을 몰랐는데 먹는 도중에 구름이 걷히고 해가 보여서 약간 더웠습니다. 이런 곳에 오면 모든 것을 남자들이 해야 한다고 상의할 때부터 다짐을 했는데 저는 약간 도와주는 시늉만하고 만 것 같습니다. 참으로 미안하고 고맙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아침 먹고 난 뒤 청소마저 끝낸 후 북행길에 올랐습니다. 시원하게 뻗은 4차선 7번 국도를 두고 구불구불한 기존 해안 도로를 이용했습니다. 누구 말처럼 바다를 원도한도 없이 구경했습니다. 간혹 구 도로를 찾을 수 없는 곳이 있어서 4차선 도로로 올라서기도 했습니다. 경정 병곡 후포 축산 등을 지났고 경상북도교육청해양수련원이라는 곳도 차창 밖으로 보면서 지나쳤습니다.

 

평해 근처에서 월송정 옛터(?)라는 간판을 보았습니다. 인근의 다른 곳으로 건물을 옮겨가고 빈터만 남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번에는 새로 지은 정자가 보였습니다. 그곳은 그냥 두고 1980년에 건축했다는 오래된 월송정(월송리 362-8)을 찾았습니다. 관동팔경의 하나로 정송강의 관동별곡에도 나오는 곳이라고 내가 권하였고 뒤를 따라 오는 차에도 연락을 취했습니다. 차에서 내려 정자까지 갈 때는 울창한 솔 숲 사이로 걸었습니다. 후덥지근한 날씨였지만 서늘한 솔바람이 땀을 씻어 주었습니다. 일행을 누각 위로 올려 보내고 내가 밑에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마침 지나가는 사람이 있어서 부탁을 하고 나도 오르려고 할 때 사람 어둡게 나온다고 모두들 내려 오라고 하셨습니다. 건물과 거리를 고려해서 사람이 설 적당한 위치를 지정해 주는 것으로 보아 사진을 잘 아는 분이 분명했습니다.

 

다시 북진을 하다가 점심도 먹고 어물도 사려고 어시장을 찾았습니다. 내비게이션 검색을 하다 보니 울진항이 나왔습니다. 나의 얄팍한 상식이 여지없이 무너졌습니다. <왜구들이 자주 출몰해서 해안가 마을들을 자주 침략을 했다. 그래서 큰 고을은 모두 바닷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영덕항은 없고 면소재지인 강구나 축산에 항구가 있으며 울진항도 없고 후포항이나 ~>이라고 언젠가 아는 척을 했는데 그것이 샛빨간 거짓말이 되고 말았습니다. 찾아간 울진항은 아주 한산했습니다.

 

결국 죽변항으로 가서 점심을 먹고 장구경을 나섰습니다. 금방 잡아온 온 새우(대하? 손바닥 정도 길이)를 담은 대야들이 자꾸 늘어났고 한쪽에서는 가래로 바닥에 흩어진 대구를 끌어 모으고 있었습니다. 다른 한쪽에서는 문어 경매가 진행되었는데 우리가 본 것중 가장 큰 것이 13만원에 낙찰이 되었습니다. 예전에 듣기로는 수신호로 이루어진다고 했는데 여기서는 접히는 상자(?)안에 가격을 적어 내밀면 경매사가 하나씩 받아서 열어 보고 낙찰자를 결정했습니다. 살아 있는 문어는 한 마리씩 그물(양파자루)에 넣어서 물속에 담갔습니다. 그냥 두면 저들끼리 다리를 뜯어 먹기에 그렇게 한다고 했습니다. 다른 곳보다 가격이 아주 싸다는데 일행들 모두 의견이 일치하여 문어를 샀으며 오징어 대구도 좀 샀습니다. 그리고 다른 것들은 개별적으로 구입을 했습니다. 다른 어시장과는 달리 구입처와 상관없이 포장만 해 주는 곳이 따로 있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은 36번 국도를 이용하였습니다. 꼬불꼬불한 길이었지만 창문 밖으로 보이는 불영계곡(?)의 절경은 왜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 눈으로 보니 이해가 갔습니다. 불영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불영사까지 걸었습니다. 제법 되는 거리였지만 옥수수 한통씩 들고 이야기를 나누며 걷다 보니 금방이었습니다. 가는 길이 장마비로 여기 저기 파인 곳이 많았습니다. 한두 번 갔던 곳이지만 갈 때마다 느낌이 새로웠습니다. 대웅전 참배하고 나와서 감로수로 목을 축이고 모여서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입장료는 이천원이었습니다. 저야 불교 신자이니 보시금이라 생각하지만 국립공원 등을 찾을 때마다 신도가 아닌 다른 일행들의 눈치를 살피게 됩니다. 다행히 이번에는 불평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조계종과 문화재청은 하루 빨리 문화재 관람료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바랍니다. <사찰 소유의 사유 재산에 대한 정당한 권한 행사>이겠지만 제대로 아는 사람이 드물고 일일이 설명하기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분천터널을 지나 소천면 소재지 가기전 잠시 옆길로 빠졌습니다. 왼쪽으로 좁은 길을 따라 비스듬히 내려가니 배나들농원(간판만)이 보이고 조금 더 가자 넓은 냇가가 나타났습니다. 잠수교를 건너서 한쪽 옆에 차를 세우고 전을 폈습니다. 건너편을 바라보니 우리가 지나온 도로 밑으로 건물들이 여러 채 보였고 그 사이 어딘가 수문을 열어 놓은 듯 엄청난 양의 물이 비탈진 인공 수로를 타고 흘러 내렸습니다. 아무리 살펴 봐도 그 위로는 둑도 냇가도 보이지 않았으니 참으로 불가사의였습니다. 비온 뒤라서 그런지 냇물의 양도 많았고 아주 깨끗했습니다. 흐르는 물에 문어 한 마리 데쳐서 안주 삼아 한잔씩 마셨습니다. 그런데 냇가 여기저기에 흐르지 않고 갇혀 있는 물도 있었습니다. 그런 부분에는 자갈 위에 물 때(흙먼지 같은 것)가 많이 끼어 있었습니다. 같은 냇가인데도 흐르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곳이 차이가 심한 것을 보고 내든 강이든 물은 흘러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시 상주로 와서 저녁을 먹고 가리점 마을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에 와서 검색해 보니 그 냇가는 낙동강이었고 봉화군 소천면 현동리 부근이었습니다. 맞은편에 물이 흘러 내리는 곳은 소수력 발전소였습니다. 그리고 역시 집에 와서 확인해 보니 정송강의 관동별곡에는 월송정이나오지 않았습니다. 월송정과 망양정을 두고 착각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남 앞에서 아는 척하지 말아야 한다고 다짐을 해 봅니다.

먼길을 운전한 사람 그리고 장보고 준비하고 요리까지 한 사람 모두 고생 많았고 덕분에 즐거웠습니다. 아참 멋진 숙소를 이용하도록 허락해 주신 분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대구(죽변 어시장)
새우(죽변어시장)
감로수 한잔(블영사)
다 같이(불영사)
신이난 삼녀와 일나미
세월을 낚는 이남
복어를 낚은 또 다른 이남
흥정을 하고(강구어시장)
파도 소리 들으며(숙소, 저녁)
아침은 간단히(숙소)
낙동강물로 ~(소천면 현동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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