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더불어

대한민국 훈장

임재수 2024. 1. 20. 19:28

지역 교육지원청에서 연락을 받고 훈장을 찾아왔습니다. 교직에서 삼십사년을 ‘성실히’근무했다고 주는 대한민국 “옥조근정훈장”입니다. 명예퇴직하고 나서 공적조서를 작성해야하는데 공적내용에 쓸 내용이 필요하니 자료를 보내 달라는 연락을 받았을 때는 무척 당황했었습니다. 남들에게 내세울만한 특별한 공적이 없는데 무슨 내용을 써야하나 난감했습니다. 그래도 교감 선생님께서 근무연한이 기준이 되고 특별한 결격 사유만 없으면 모두 받는 것이라는 말씀에 공적의 요지를 보내 드렸습니다. 재가 지도해서 학생들이 수상한 내역 등 사실적인 면에서는 조금도 허위가 없었는데, ‘투철한 사명감’등 추상적인 표현에서는 제가 생각해도 낯간지러운 표현이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실제로 공적 조서에 실무자께서 그대로 쓰셨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평소에 전혀 연락이 되지 않았던 제자들, 1983-1984년에 담임을 맡았던 학생들과 연락이 닿았습니다. 어쩌다가 한 사람과 연락이 되니 갑자기 여러 사람들과 연락이 되고 전화와 카톡이 불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잠시 착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도교육청에서 훈장을 전수하는 날 지금 연락이 닿은 제자들 중 대구에 사는 사람들만이라도 불러서 축하받고 점심이라도 대접하고 싶었습니다. 전화가 와서 “보고 싶다” 찾아 뵙겠다“는 말을 듣고 보니 삼십년 전의 제자들이 한 번쯤 만나 보고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훈장을 찾아 가라는 연락을 받고 보니 허탈했습니다. “대한민국의 훈장이 대통령의 이름으로 수여하는 훈장이 도교육감이 대신 전달하는 것도 아니고 지역교육청에 보내서 전달하는구나. 훈장도 별거 아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누군가 비웃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네가 잘 했는 게 뭐 있는데” “34년 아무 탈 없이 성실히 근무했다고? 그런 사람 전국에 전국에 수천명이야!” 그렇습니다. 훈장 받는다고 목에 힘주고 수여식에 불러서 축하받고 모두가 저의 착각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대한민국의 훈장 너무 많아서 가치가 없다는 생각이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 나라에서는 훈장을 주기 위해서 몇 년에 걸친 검증을 한다는 말도 들었던 것 같습니다. 청와대에서 직접 불러서 수여할 수 있을 만큼만 훈장을 대폭 줄여야 한다는 생각을 하다가 몇 개월전 퇴임하는 대통령이 받은 ‘셀프 훈장’을 비난했던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지기도 했습니다.

다시 생각이 났습니다. 40대 중년이 되어 두 시간을 달려 궁벽한 시골까지 찾아 온 제자들. 동기회에 초청하여 단체로 큰 절을 올린 14회, 15회 졸업생들에게 모두 고맙다는 인사를 전합니다. "나는 자네들에게 최고의 훈장을 받았네" (2013.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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