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더불어

격려와 감독 사이

임재수 2024. 4. 26. 16:04

배수관리가 잘 안 되어 축축한 곳에 웃자란 풀은 맨손으로도 잘 뽑힌다. 대부분 이런 것들이지만 뿌리가 깊이 박혀 안 뽑히는 것들이 가끔 있다. 이럴 때는 호미가 필요하다. 줄기를 감고 올라가는 덩굴들(댕댕이 환삼덩굴 등)을 걷을 때는 낫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줄기들이 우거진 좁은 틈새에 난 풀은 톱낫으로 걸고 당겨야 한다.

그런데 이 연장들을 세 가지 다 들고 다니기도 어렵다. 잘 뽑히는 것들을 오른 손으로 한창 뽑다보면 그 하나마저도 어디 두었는지 찾아 헤매고 다니는 때가 많다. 그래서 어제부터 톱낫(거겸-일본식 한자어) 하나만 들고 일을 했다. 덩굴 걷기(자르기)도 좋고 가시나무 좁은 틈새를 긁기도 용이했다. 

오늘도 청너머 두릅밭에서 초군들과 고군부투하고 있는데 응원군이 도착했다. 목이 마르기 시작할 때쯤 황송하옵게도 여왕마마께서 손수 마실 것도 챙겨 오셨다. 성은에 감격하며 분골쇄신하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런데 내가 하는 일이 마음에 안 드신 모양이었다.

--뿌렁가지를 뽑아야지 이카만 거기서 금방 또 돋는다구요!
--그게 말이요  말츠름 십지 안슴미다!
--아니 발본색원 말도 몰라요?
-- 발본이 서근인지는 몰라도 깔끔하게 매만 보기는 조아도 속도가 너무 느려서.
--그 무슨 말씀이요
--저 많은 풀더미에서 시넘하는 어린 두릅싹 빨리 구출해야~
--속도도 별로 빠르지 않구만요. 제가 보기에는~

울컥하고 무엇이 치밀어 올라오는 듯했다. <물동이 호미자루  내몰라라 내 던지고 말만 듣던 서울로 단봇짐을 쌀 뻔 했다> 오늘부로 해고이니 내일부터 출근하지 말라는 지시가 떨어지면 좋으련만 그럴 기미도 안 보인다.

--야간 자율학습 당번 때 교장샘이 간식 사들고 나오신 적이 있지?
--응, 가끔!
--왜 그러시는지 아나?
--수고한다고 경녀하시는 차은에서.
--한눈 안 팔고 잘 하는지 감독하려는 의도도~
--그 이야기가 여개서 왜 나와?
--마실거 챙겨서 두릅밭으로 납신 이유가~
--머~머 머시라?
--어이그 둔하긴, 세상만사가 다 비슷해여!

작업전(07시 41분)
작업후(11시 24분)
여왕마마의 발본색원
소신의 대충대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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