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의 기준
가족과더불어
2018-06-30 13:48:20
벌써 이십년 전의 일이다.
둘째 처남이 별세하셨다. 연가를 내면서 그냥 적당히 둘러 대려고 했는데 교장선생님께서 진지하게 질문하시는 바람에 나도 몰래 실토를 했다.
“저런 어쩌다가 그래?”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살만큼 사셨습니다”
“올해 몇인데?”
“내년(후년?)에 환갑입니다.”
“데끼 이사람아 그걸 뭐 오래 살았다고”
그냥 의례적으로 하시는 말씀이라고 생각하고 교장실을 나왔다. 그리고 엄청난 실언이었음을 깨달은 것은 한참 뒤였다. 그러니까 돌아가신 분은 그 분보다 한참 젊었던 것이었다.
1976년 아버님께서는 50에 세상을 뜨셨다. 어머님은 49, 저는 21, 아홉 살 위의 누님은 출가, 밑으로는 동생이 넷, 그중 막내 동생이 여덟 살이었는데 죽음도 모르고 슬픔도 몰랐던 것 같았다. 이때부터 나는 ‘0부’라는 말이 듣기 싫었다. 그냥 지나가는 말만 들어도 눈물이 나왔다. 남자들끼리 한잔 걸치면서 나오는 “어디 0부들 없나” “0부를 따~”라는 말이 나오면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아야만 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 와서는 나의 비겁함이 한심해서 견딜 수 없었다.
그런데 그 슬픔과 충격이 어머님께서 받으신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나는 아버님을 떠나보낸 뒤에도 대구에서 학교를 2년 더 다녔고 졸업 후에는 풍양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가 9월에 입대를 했다. 그래서 어머님과 같이 보낸 시간은 별로 없었다. 결국 어머님의 외롭고 서러운 사정을 들어 주는 것은 12살, 8살 어린 동생들 몫이었다. 밤 늦게 마실 다녀와서는 단잠이 든 동생들(자식들)을 깨워서는 “이놈들아 너들은 아버지 생각도 안나나”라고 푸념을 하셨다고 한다. 한밤중에 들려오는 어머님의 넋두리 하소연에 동생들은 잠을 잘 수 없었다고 한다. 내가 들은 말씀은 “그래도(저 아버지가 죽었는데) 딸은 밥을 먹던데요”였다. 남편을 잃은 당신의 입장에서는 장성한 딸의 밥을 먹는 모습마저 섭섭했다는 뜻이리라.
마을에 초상이 나면 어머니께서 하시는 첫마디는 “너 아버지보다 몇 살 더 살았다”였다. 칠십을 넘은 동네 할아버지께서 별세하고 유족이신 할머니가 애통한 곡소리를 내면 “그만하면 오래 사셨는데 뭐가 그리 원통할까”라고 말씀하셨다. 50을 못 살고 죽은 사람이 나오면 그 때서야 애통한 일이었다. 어머님께 장수의 기준은 아버님께서 사셨던 50이었던 것이다. 어머님의 그 장수의 기준이 내 마음 속에 깔려 있었던 모양이다. 고인보다도 6~7세 많은 정년을 앞둔 교장선생님께 그런 실언을 하게 된 것도 그탓인지 모르겠다.
어머님께서는 34년을 홀로 사시다가 4년전 별세하셨다. 그리고 내 나이 이제 쉰아홉이니 세월 참 빠르다. 아직 사위도 보지 못했고, 아들 장가도 보내지 못했다. 태어나지도 않은 손자손녀들에게 추억거리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십여년 더 건강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어머님의 기준보다 삼십년이나 더 오래 살고 싶다니 허허 참 내가 욕심이 너무 많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때 교장선생님께 한말과 지금의 말이 너무 다르다고 남들이 손가락질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사람의 오래 살고 싶은 욕심은 예나 이제나 다름이 없는 모양이다.
(((양송천 응정이 어느 고을의 사또가 되어 관청 건물을 지을 때의 일이다. 도목수가 상량하고 톱질을 하는 중에 마침 손님이 찾아 왔다. 그(도목수가 톱질하는) 아래에서 주인과 손님이 마주 앉아 술을 마시는데 상위에 오른 잣(해송자)이 매우 싱싱했다. 송천이 아랫 사람을 불러
“이 씨앗을 동산에 심어라, 나무가 자라면 베어서 내 죽을 때 관을 짜겠노라.”라고 당부했다.
그러자 같이 술을 마시던 손님이
“그 잣나무가 자라고 열매를 맺으면 다시 그것을 따서 심겠소. 그 나무가 자라면 내 죽을 때 관을 짜리다.”
위에서 톱질하던 도목수가 주객의 대화를 듣고 한 말씀 하셨다.
“먼 훗날 두 분 합하께서 오래오래 사시다 별세하시면 그 때 제가 관을 짜 드리겠습니다.”
주객이 함께 박장대소하고 곡식 닷섬을 상으로 주었다.
슬프구나 오래 살고 일찍 죽는 것이 사람의 뜻대로 되겠는가?]]]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나왔던 어우야담의 내용을 조금 쉽게 풀이함
2014.12.18(페이스북)
'가족과더불어'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공주님들의 싸움 (0) | 2022.11.04 |
---|---|
나도 엄마가 있으면 (0) | 2022.11.04 |
생일은 엄마를 챙기는 날 (0) | 2022.11.04 |
맨손으로 벌초한 사연 (0) | 2022.11.04 |
손자자랑 (1) | 2022.11.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