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더불어

생일은 엄마를 챙기는 날

임재수 2022. 11. 4. 16:49

생일은 엄마를 챙기는 날

가족과더불어

2018-07-14 21:22:16


함창 명주박물관 근처 <00골00식>에서 우리집 육남매가 모두 모였습니다. 푸짐하게 차려 놓았습니다. 케이크 위 초에 불을 붙이고 모두들 합창을 했습니다.
"생일 축하 함니다. 생일 추카 합니다. 사랑하~는 우리오~빠 항갑추카 함니다."
입으로 불어서 촛불을 끄려다가 생각해 보니 좀 이상했습니다. 
나(둘째) : 머라캔나 시방? 항갑?
그러고 보니 케이크 위에 꼽힌 초가 굵은 게 여섯이고 작은 것이 두 개였습니다. 나는 굵은 초 네 개를 뽑아 냈습니다. 
나 : 머 이키 만나? 나는 아직 스물살 밖에 안 댔는데
그리고 작은 것 두 개마저 빼내려고 하는데
첫째 : 왜 이카나 동생 니 나이도 모리나
막내 : 낼모래면 내가 오십이유, 그런데 엄마는?
세째 : 아참 누가 엄마한테 전아 해 바
넷째 : 저나도 안반는다 마실 갓겠지

한참 이러고 있는데 직원이 들어 와서 '할머니 한분이 밖에서 기다리고 계신다'고 전했습니다.
막내 : 우리 엄마다!
모두들 밖으로 뛰어 나갔습니다.
다섯째 : 추운데 왜 밖에 서 계시여?
엄마 : 매정한 것들 우째 지들끼리만~"
첫째 : 다섯 밤 자만 아부지 제사자나 그때~
엄마 : 그건 그기고?
모두들 : ----
엄마 : 생일은 마리다 나아가이고 키아준 준 저들 어마이를 챙기는 나리라고 동네 어른들 다 카더라
어디선가 들었던 말 같습니다. 그래서 고개만 푹 숙이고 있었습니다.
엄마 : 애비는 배았다는 놈이 그것도 모리나
나 : 엄마 미안해 이제라도 들어가
엄마 : 내사 실타! 엎드려 절바끼지. 그만 갈란다.
가지 말라고 우리 육남매가 울며불며 매달렸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매정하게 뿌리치고 떠나갔습니다.

방으로 다시 들어오니 가득 차린 음식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먹을 생각도 하지 않고 모두들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훌쩍거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래도 엄마가 달라진 것 같다고 막내는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그러다가 누님이 나섰습니다.
첫째 : 이 음식 모두들 싸
나 : 어쩌실려고
첫째 : 싸들고 엄마한테 가서 모두들 무릎 꿇고 빌어야지
남은 음식들 아니 손도 대지 않는 것을 그릇에 담고 비닐 봉지를 얻어 싸서 승용차에 가득 실었습니다. 엄마가 사시는 고향집으로 차를 몰았습니다.

뭉어리재를 올라가는데 이놈의 차가 빌빌하더니 그만 멈추어 섰습니다. 안내양과 운전수가 나타났습니다.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차가 히미 딸리서 몬올라 감니다. 학생들캉 젊은 사람들은 내리서 고개 마루꺼정 거러 주세요"
버스를 빽빽하게 채웠든 손님들이 다 내리고 노인분들 몇 사람만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나는 음식 상자를 꼭 잡고 자리에 앉아서 버텼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호통을 칩니다.
00 : 학생은 왜 안 내려?
나 : 저 학생 아닌데요. 오늘 항갑이구만
00 : 머 항갑? 대가리에 시똥도 안 뻐거진게?
** : 빌꼬라지 다 보겐네. 너 하꾜 선생님이 그리 가리키던?
버티다가 하는 수 없이 내렸습니다. 엄마한테 가지고 갈 음식이 걱정이 되어 뛰다 싶이 걸었습니다. 뭉어리재 정상에 오르니 버스는 벌써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가쁜 숨을 몰아 쉬며 버스에 올랐습니다.

차 안에서는 술판이 벌어졌습니다. 안주도 푸짐했습니다. '걸어서 올라 오니라 애썼다'고 하면서 누군가 저 보고도 한잔 권했습니다. 막걸리 한잔 받아 마시고 안주 하나 집어서 입에 넣다가 보니 느낌이 이상했습니다. 갑자기 내가 앉았던 자리를 보니 그랬습니다. 어머니께 갖다 드릴 것을 이 사람들이 끌러서 먹고 있었던 것입니다. 나는 그만 고함을 질렀습니다.
"머야, 우리 엄마 드릴 껀데"
그리고는 펼쳐 놓은 음식들을 주워담기 시작했습니다. 먹으려고 손에 들고 있는 것들도 빼앗아 담았습니다. 정신 없이 허둥거리는데 누군가 말했습니다.
"죽은 사람보다 산 사람 입이 더 중요한 거 아니요?"

온 몸에 힘이 쭉 빠진 나는 그만 그자리에 주저 앉고 말았습니다.

지난 10월 18일(음력 8월 29일)에 생일이 지나갔습니다. 태어났던 병신년에는 10월3일(음력 8월 29일)이었습니다. 페이스북이 음력날짜도 설정이 되기에 그렇게 해 놓았습니다. 하지만 양력 날짜만 알려 주고 음력 날짜에는 아무런 알림이 없네요. 가짜 생일에만 알림이 뜨는 페이스북에 생일 설정을 지워 버리겠습니다. 그래도 지난 10월 3일을 전후 해서 생일 축하해준 모든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생일은 엄마를 챙기는 날이다"말은 선배이자 한 학교에서 근무했던 <송0곤>교장샘께(당시에는 교감) 들었습니다. 고풍을 지키는 선비집안에서 마누라 생일을 챙겨 주는 방법이라고 했습니다. 층층이 어른들을 모시고 살면서 마누라 생일을 챙기기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따지고 보면 신랑(서방)이 마누라 생일을 챙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시부모께서 딸을 키워서 우리 집안에 보내 주신 사돈댁에 감사의 인사로 떡도 하고 고기도 사고 술도 빚어서 아들 며느리를 친정보내고 처가 보냈다고 합니다.

페이스북(2017.11.5) 카카오스토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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