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더불어

공주님들의 싸움

임재수 2022. 11. 4. 16:58

공주님들의 싸움

가족과더불어

2018-08-12 21:30:14


서울에 사시는 장모님 세째 따님께서 전화를 하셨다. 다섯째 따님이 받으셨다. 
셋째 : 고사리 마흔 봉다리만 주라.
다섯째 : 알아쪄
셋째 : 올 고사리 조은 걸로 조야 해
다섯째 : 걱쩡 부뜰어 매랑께
셋째 : 왕언니 조은거 다 주고 나는 찌꺼기 주만 가만 안 둔다

옆에서 들어보니 대충 그런 내용이다. 나는 은근히 걱정이 되어
한마디 보탰다. 전화기 너머에 계시는 셋째와 옆에 계신 왕언니(첫째 따님)도 들을 수 있도록 조금 큰 소리로 말했다.

나 : 내년부터는 수학이 다 끝나거등 골고루 섞어서 한꺼번에 나누어 주어야 하겠다. 이러다가 잘 모타만 의가 상할 지도 모르자나
첫째 : 조은 거 먹고 시푸만 내리 와서 일 하라고 해! 고사리밭 풀도 뽑고 살믈 때 불도 때야지! 핀하기 가마이 안자 이쓰민서, 올 고사리 조은 건 우째 알아가꼬.

옆에서 듣고 있던 첫째 따님께서 나보고 하시는 말씀인지 전화기 너머 세째 보고 하시는 말씀인지 하신다.

나 : (앗 뜨거라!) 듣고 보니 참 지당하신 말씀이네요. 그럼요, 고생 많이 하신 처형께서 당연히 우선권이 있지요. 암 그렇고 말고요
나는 그만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날 저녁에 나는 “공주님들의 싸움"을 좀 부풀려서 장모님께 일러바쳤다. 칭찬이라도 들을 줄 알았는데 장모님 반응이 영 시큰둥하셨다.
장모님 : 임서방은 그냥 가마니 있게!
나 : ---
장모님 :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라구
나 : 저러다가 자매간에 등이라도 지게 되면?
장모님 : 저러면서 커능걸세
나 : 커다니요, 벌써 장모님보다 연세가 많은뎁쇼
장모님 : 그런데 자네 눈에는 싸움으로 보이나?
나 :~
장모님 : 걱정하지 말게 예전에도 다 그랬네

그리고 며칠 뒤 첫째 따님은 며칠 후 다시 온다는 약속을 하고 떠났습니다. 어버이날을 앞두고 수금을 하러 가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조리원에 있던 우리 딸과 외손자를 집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일거리가 많아졌습니다. 이틀에 한번 수확하는 고사리 꺾기 그리고 풀 뽑는 일 등 세사람이 하던 일을 두 사람이 해야 합니다. 다섯째 따님은 딸과 외손자 뒷바라지를 해야 하므로 어떤 때는 내 혼자 해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동안 가뭄이 워낙 심해서 수확할 고사리의 량이 적고 풀이 적게 나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다섯째 따님은 고사리가 예상한 만큼 나오지 않아서 주문량을 감당할 수 없다고 걱정인데 앞에서 "다행"이라고 한 말은 아마도 취소해야 할 듯합니다.

2017.5.10 (페이스북) 5.11(카카오스토리)에도 올렸습니다

'가족과더불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묵만들기 연수  (0) 2022.11.04
익지도 않은 대추를  (0) 2022.11.04
나도 엄마가 있으면  (0) 2022.11.04
생일은 엄마를 챙기는 날  (0) 2022.11.04
맨손으로 벌초한 사연  (0) 2022.1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