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더불어

양파 이삭을 주워다

임재수 2022. 11. 4. 17:46

양파 이삭을 주워다

땅과더불어

2019-07-21 12:07:35


그날은 김회장댁 양파를 거두어 담는 날이었다. 얼마 안 되는 가리점 주민들 중에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다 모였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둘째인 용식이가 사람들을 모아 놓고 여러 가지 당부를 했다. 껍데기가 많이 벗겨진 것 상처가 난 것은 당장 먹기에는 지장이 없어도 보관이 어려우니 담으면 안 된다고 했다. 알이 너무 잔 것도 상품성이 없으니 역시 그냥 두라고 했다. 줄기를 자르는 사람도 골라 내고 담을 때도 가려 내야 한다고 말했다.

 

작업은 세 단계로 나누어서 진행되었다. 먼저 안주인을 중심으로 동네 아지매들이 가위로 양파 줄기를 자르고 지나갔다. 다음에는 젊은 아저씨들이 주워 담았다. 마지막으로 둘째인 용식이와 응삼이가 트랙터로 들어 올려 일톤 트럭에 싣고 공용 농산물 집하장으로 옮겼다. 거기서는 대형트럭이 와서 공판장으로 실어 간다고 했다. 담는 일은 양파를 삼태기에 끌어 모아 트랙터에 걸어 둔 톤백에 옮겨 담았다. 하나에 500kg 이나 들어가니 어느 정도 양이 차면 사람의 힘으로는 다룰 수 없었다. 그래서 트랙터로 옮겨 다니며 담았다.

 

점심을 먹고 잠시 쉴 참이었다.

저것들은 우쨀 거여

고랑에 남아 있는 비품들을 가리키며 누군가 물었다.

용식이가 한숨 쉬면서 대답했다.

그냥 버리는 거지 뭐

잘기는 해도 먹기에는 지장이 읍자나?”
인건비도 안 나와여! 그냥 두면 지나가는 사람 주~다 먹겠지!”
자비심이 아주 철철 흘러 넘쳐요

누군가가 비알밭을 맸다.

도리가 읍자나
저거 주워 가서 먹는 만큼 가격이 떨어지거등

맞아여 좋은 것도 덜 팔리고

휴대전화기 새 것으로 보상 판매하면서 헌 거 모조리 수거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래

확 땅 파고 묻어 버려

~끼 못써 그러만

조금 떨어져 있던 김회장이 한마디 하셨다.

지 말씀 들어 보랑깨요, 쌀깝 떨어진다고 멀쩡한 쌀을 바다에 쳐넣었다는~”

옛날에 미국에서 그런 적 있었지. 하지만 갸들은 장사꾼이고 우리 같은 농사꾼은 그러만 안대는 거여
그 말씀에 더 이상 이견을 내는 사람은 없었다. 폭락하는 양파 가격에 대한 울분과 대책도 없는 농정에 대한 성토가 잠시 이어졌다. 육두문자가 쏟아지고 트랙터 몰고 나가서 시위라도 벌여야 한다는 말도 나왔다. 그러다가 다시 각자 맡은 일을 시작하였다..

 

담는 순서가 지나가고 김회장이 남아서 이것저것 살피고 점검하는데 고급 승용차 한 대가 지나가다 멈춰 섰다. 그리고 한 사람이 내려서는 김회장 쪽으로 다가오더니 물었다.

이삭 좀 주워 가도 되겠습니까?”

그러슈!”
인심 좋은 김회장이 허락을 하셨다. 차 안을 향하여 소리를 치자 몇 사람이 더 내렸다. 고랑에 있는 것 중에서 먹을 만한 것을 골라 가라고 김회장은 친절하게 안내를 하고 다음 장소로 이동을 했다. 미리 준비를 한 것처럼 쇼핑백이나 비닐 봉투를 하나씩 들고 골라 담았다. 그러다가 상자까지 꺼내더니 모아서 담기 시작을 했다.

 

이때 응삼이와 용식이가 트럭을 몰고 나타났다.

어이 당신들 남의 밭에서 머하는 거요?”

응삼이가 큰 소리로 물었다.

이삭 줍고 있습니다.”

누구 맘대로?”

내일이라도 주워서 즙이라도 짤까 하고 응삼이는 망설이고 있었다. 주인한테 말하고 허락을 받으려고 기회만 노리고 있었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선수를 빼앗겨 열이 좀 났던 것이었다.
그런데 이양반이 어따 대고 반말이요?”
앙 그래도 농사꾼 속 디지버지는데 시방?”

용식이도 그만 열이 잔뜩 올라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그러자 상대방이 한발 물러 서는 듯했다.
허락 받았소 얼굴이 좀 검고 머리가 희끗희끗한 ~”

그 말에 용식이도 주춤하는데 응삼이가 빈정거렸다.

알기 머야 흥! 차는 존거 타고 댕기네
맞자 요즘 인는 것들이 더해요

~? 당신들 말 다해써?”

그래서 멱살잡이를 하고 밀치고 넘어지고 옥신각신하는데 일용 엄니하고 복길이가 지나가다 목격을 했고 일용엄니가 호들갑을 떨자 복길이가 신고를 했다.

 

나중에 연락을 받은 김회장은 허둥지둥 파출소로 달려 왔다. 전후사정을 파악한 후에는 혀를 끌끌 차더니 한숨을 쉬었다. 아직까지 분을 삭이지 못한 용식이가 저런 것들 뭐가 이뻐서 주었느냐 누구 말대로 땅 파고 묻었어야 하는 것인데 등등 김회장을 향해서 불평을 쏟아냈다. 그러자 김회장은 갑자기 용식이 뺨을 때렸다. 놀란 사람들이 말리고 나서는데 타이르듯 말을 이었다.

먹을 것을 그러키 하만 천벌 반는다. 울화통 터지는 건 나도 매 한가지다. 그래도 이놈아 맘을 그리 쓰만 농사꾼들만 따돌림 당하는거여!”

 

그때 풍채 좋은 어른 한 분이 허겁지겁 들어오다 김회장과 마주쳤다. 두 어른은 한참 동안 상대방 얼굴을 쳐다봤다.

당신 혹시 철~ ~ 철우?”

가리점 사는 김철우 맞소만?”

나 원수니야 송원순 마점중 1학년때 한반 했자나!”
~ 그래! 그동안 우째 지내써?”
서울에서 조그만 사업하는데

그런데 여긴 어쩐 일로 오셨남?”

 

대답하려고 하는데 이삭을 줍던 일행이 모두 일어서서 인사를 했고 그 중 하나가 말썽을 피워서 죄송하다고 말했다. 상황 설명을 듣고 난 뒤 노신사가 역정을 냈다.

양파든 머든 왜 어더 멍느냐고? 우리가 거지냐?”
열이 올라서 퍼 부었다. 일행들은 모두 머리를 숙이고 말이 없는데 김회장이 다시 나섰다.

거지라니 무슨 말씀을 그리 하시나! 어차피 버릴 껀데~”
니들은 방송도 뉴스도 안보냐? 양파갑시 폭락해서 농민들은 자살 직전이라 카던데?”

이왕 버리는 것이니 얻어다가 이웃에 있는 보육원과 경로당에 좀 갖다 주면 좋다고 해서~”

ㅉㅉ 적선을 해도 내 돈 주고 사서 해야지! 손도 안대고 코 풀라고 해?”

잘 알겠습니다. 앞으로 명심하겠습니다 사장님

머리를 크게 숙였고 그렇게 해서 상황은 원만하게 끝이 났다.

 

이삭 줍던 서울 손님도 떠나가고 다음날 송사장이 주문한 양파를 싣고 소형 트럭 두 대가 서울로 떠났다. 회사 직원들에게 한 자루씩 나누어 주고 구내식당에서 부식으로도 사용한다고 했다. 그리고 자매결연한 보육원과 경로당에도 보낸다고 했다. 고사리 마른 능이 오미자청 등의 선물을 싣고 김회장님도 따라 나섰다.

모아 담기 중 잠시 휴식( 가리점 안종훈 이장댁 양파 수확중)

 

양파줄기 자르기 ( 가리점 안종훈 이장댁 양파 수확중)
양파줄기 자르기 ( 가리점 안종훈 이장댁 양파 수확중)
모아 담기 중 잠시 휴식 ( 가리점 안종훈 이장댁 양파 수확중)

'세상과더불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배얌그리고기생충  (0) 2022.11.04
엉터리 정보  (0) 2022.11.04
거수기 대의원  (1) 2022.11.04
사둔네딸이라고  (0) 2022.11.04
재량권  (0) 2022.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