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밥하고 반찬 만드는 것은 대부분 누님이 하셨다. 스물두살에 누님이 시집갈 때까지 어머님은 그런 일 못하시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버님 마음에 안 드는 것이 있으면 그 불똥은 어머님께로 튀었다.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일이었다.
큰집에서 제사를 모실 때, 부엌에서는 어머님과 누님 그리고 당숙모님들이 분주하게 일하셨고 종부이신 큰어머님은 안방에서 샛문을 통해서 부엌으로 지시를 하셨다. 큰아버님께서 질책을 하시면 큰어머께서 뭐라고 변명을 하셨다.
누님이 하신 일에 어머님께 불똥이 튀고, 부엌에서 하신 일에 큰어머님이 변명을 하시는 세상의 도리를 이해한 것은 나이를 좀더 먹고 난 뒤의 일이었다.
신군부의 횡포에 맞서다가 35년전에 돌아가신 분 앞으로 대통령 명의의 연하장이 도착했다는 소식이다. 물론 실무진의 실수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사과를 하고 수습에 나설 책임은 실무진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