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과더불어

장유유서

임재수 2024. 1. 1. 20:22

오래 전에 아무개씨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오랜 만에 고향을 찾아서 3년위의 선배 한 분과 5년 아래 후배 서넛이 함께 자리를 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위계질서가 엉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술이 한잔 들어간 탓인지 말도 거침없고 돌아 앉은 시늉만 했지 완전히 맞담배질이었다.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참았다. 그 자리에서 말하면 선배님께 누가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다음날 따로 만날 기회가 있어서 좋게 말했다. 8년 이상 차이가 나는데 예의는 갖춰야 한다고 말했더니 모두들 수긍했다. 세상에는 듣기 싫은 말도 누군가는 해야 한다고 평소에 믿었다. 하지만 무골호인 소리를 듣던 사람이 그런 역할을 한 것은 처음이었다. 순순히 받아들인 후배들이 고맙기도 했다.

 

그런데 며칠 후에 그 선배님 전화를 하셨다. 후배들 분위기가 영 달라졌는데 무슨 말 했느냐는 말씀이었다. 최소한의 격식은 차려야 한다고 좋은 말로 당부했으니 걱정마시라고 했다. 그랬더 선배의 입에서 나온 탄식은 전혀  밖이었다.  "그만 나는 누구하고 놀아야 하노!"

 

나이 대접을 받지 못하면 기분이 나쁘다. 나이가 많다고 격식을 따지면 젊은이가 기피한다. 그 이치를 아는 어른들은 스스로 적당한 거리를 유지했다. 상대방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하려는 배려심이다. 저 이야기 속의 선배는 격식보다는 부담없고 편안한 관계를 원했던 것 같다. 어쩌면 동년배로부터 이런 타박을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야 이 사람아 체통 좀 지켜!"

 

우리 마을에서도 내가 어릴 때 한두 살 차이는 말할 것도 없고 너댓 살 차이에도  존대어를  쓴 기억이 없다. 예의범절도 모르는 막가는 동네라고 손가락질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두어살 차이를 엄격하게 따지는 것은 신식 교육(학교 문화)의 산물이지 전통 예법은 아니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그 근거는 [동몽선습]의 <장유유서>편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런 까닭에 나보다 나이가 갑절이면 아버지처럼 섬기고, 열 살이 많으면 형처럼 대우하며, 다섯 살이 많으면 한 걸음 뒤에서 따라 간다"고 했다. 나는 이것을  "열 살 이상은 아주 정중하게 대우하고, 다섯살 차이가 나면 존대어는 안 쓰지만 약간 조심한다"고 해석한다. 그러면 다섯살 미만이면 친구처럼 터놓고 지낼 수 있다고 보면 억측일까?

 

어릴 때부터 보아온 우리마을 문화가 동몽선습의 가르침과 맞닿아 있기는 하지만 이것을 따르자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청소년기를 외지에서 보낸 내 자신이 신식교육(학교 문화)에 익숙해지고 말았다. 나보다 조금이라도 늦은 사람들  대부분 다 그렇다. 대중들이 가는 길이 예법이고 문화이지 그기에 옳고 그름이 정해진 것은 없다고 하겠다.

 

내 이야기 하나만 더 하겠다. 상주 교육청에 부임하신 장학사 한분이 있었다. 자신이 국어교육과 1년 후배가 된다고 하면서 나를 보고 선배님이라고 불러 주셨다. 그렇게만 알고 지내다가 고등학교는 나보다 1년 선배가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삼수(최소한) 끝에 국어교육과에 입학하여 서열이 역전되었던 것이다. 그동안 선배라고 거만하게 굴었던 적은 없는지 반성하면서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얼마 후 나는 명퇴하고  다시 만날 기회가 지금까지 없었다.

========================

동몽선습( 童蒙先習)  : 조선 중기의 유학자인 소요당(消遙堂) 박세무(朴世茂, 1487~1564)가 중종 38년인 1543년에 편찬한 아동용 교과서

===========================

본문속에 인용된 원문은 아래와 같다.
是故
 年長以倍則父事之하고 十年以長則兄事之하고 五年以長則肩隨之

 

'이웃과더불어'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추씨넣기  (0) 2024.01.18
우리집주변  (0) 2024.01.18
정신 채리라 카이!  (0) 2023.12.25
가치경제박람회  (0) 2023.10.21
식품위생교육  (0) 2023.0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