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과더불어

참깨수확

임재수 2022. 11. 4. 17:49

참깨수확

땅과더불어

2019-08-23 14:58:47


영감은 왜 안 하느냐고 엄마가 핀잔을 주셨다. 저들 농사 저가 하도록 내버려 둬야지 자꾸 도와 주만 버릇 나빠진다고 아부지께서 말씀 하셨다. 참말 그렇다고 엄마도 맞장구를 치시더니 논둑에 걸터 앉으셨고 아부지께서는 담배를 꺼내어 불을 붙이셨다. 옆사람과 함께 베고 묶어서 차 있는 곳까지 옮겨 실었다. 

 다 흘리고 머 남는기 있냐고 빨리 안찌고 머 했냐고 윗논에서 일하시던 아지매가 참견하셨다. 그때 엄마가 나섰고 애꿎은 누님에게로 불똥이 튀었다.

"김시리 너도 너무하구나!"

"왜 엄마?"
놀란 눈을 하고 누님이 반문을 하셨다.

"철모리는 동상이 저키 애를 쓰만 도아 주고 갈구치 조야지!"

"쟈가 철을 몰라요? 그리고 대구서 여개까지 얼매나 먼데?"

나는 엄마 곁으로 가서 슬쩍 치마자락을 당겼다. 그리고 나즈막하게 속삭였다.

'엄마 나 항갑 벌써 지내써'

"야가 나만 머거찌 아무것도 모리자나 그리고 대구가 머가 머노 차만 타만 금방 오는데"

"아들밖에 모르는건 여전하시네. 해도해도 너무해여!"
누님은 훌쩍훌쩍 눈물을 눈물을 훔치기 시작했다.

"대구가 어덴데 여개까정 오나 그건 질부가 틀릿따"

지나 가시던 집안 할매가 한마디 하셨다.
"작은 엄님도 그렇고 김시리 자네도 멀 모르는구먼"
다시 아지매가 말씀 하셨다.
"왜요?"

"시방 성님이 자내를 두고 머카는기 아이고 우리를 두고 비알밭 매고 계시는거여. 이웃 사람들이 무간심하다고 나무래는 거자나! 대구서 여까지 못 오는 거는 시상이 다 아는걸" 
"그건 머라고 말 모태여"
엄마는 그냥 얼버무리셨다.

"그런데요 오민 가민 암만 바도 아적 덜 이근 저쪽만 보이고 잘 이근 여개는 항개도 안 비걸랑요. 잘 보이만 벌써 갈구치 조찌 왜 말 안해써까요?"

 

다시 아부지가 말씀하셨다.

"잘 모리만 어른들께 무러가민서 해라. 차자 가서도 여짜 보고 지나가는 사람 불러서 물어 바라. 그냥 부르기 미안항께 오늘 같은날 막걸리 밋빙 가져 와서 논가 마시기도 하고. 그러만 그분들 눈에 <거르미 시다> <너무 달기 시멌다> <찔 때가 댔다> 등 모든기 다 보이고 갈챠 줄끼다. 그기 사람의 도리고 살아가는 재미란다."

 

그래서 나는 은척으로 차를 몰았다. 일하다 말고 어디가느냐고 옆에서 물었지만 건성으로 대답했다. 농협마트에서 막걸리하고 안주거리도 이것저것 샀다. 그런데 돌아 와서 보니 아부지도 엄마도 어디로 가셨는지 없다. 옆사람이 혼자서 일을 하고 있다. 어디 가셨냐고 하니 저 멀리 늦은목 뒷산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한참 있다가 아부지가 당부하신 말씀이 생각나서 윗논에서 일을 하고 계시는 아지매를 불렀다. 바빠서 못 마신다고 하셨다. 지나가는 어른들도 아무도 없으니 부를 사람이 없다. 빨리 끝내고 어디 가야 하는데 꾸물거린다고 옆에서 짜증을 냈다.

 

쉬이~익 밥솥에서 김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눈을 떠 보니 옆 사람은 벌써 나가고 없었다. 세수를 대충하고 안약을 넣었다. 밥이 다 되자 혼자서 차려 먹고 참깨밭(논)으로 나갔다. 이틀째 이어지는 참깨 수확이었다. 요즈음의 날씨가 딱 그렇다. 집에서 쉬고 있으면 얼마나 시원한지 천년만년 살고 싶다. 그런데 들에 나가서 뭐를 좀 하려들면 너무 더워서 농사 괜히 시작했다는 생각뿐이다. 참깨를 수확하는데 얼마나 더운지 땀이 비오듯 흘러 내렸다.

 

낫질을 하면서 아무리 살살 당겨도 참깨가 우수수 흘러내렸다. 옆사람이 혀를 끌끌 차더니 가까이 다가와 시범을 보였다. 참깨 골을 따라 길이가 한 발 조금 더 되는 비닐을 깔고 그쪽으로 살짝 기울여서 베니 흐르는 알갱이가 비닐 안에 떨어졌다. 베에낸 것과 흘러 내린 것을 비닐로 싸서 한 곳으로 모았다. 그리고 다시 묶어서 차에 싣고 얻어둔 비닐 하우스로 옮겼다.

 

지나가던 아저씨가 태풍 피해가 막심하다고 했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우리 참깨는 하나도쓰러진게 없다고 했다. 그러자 자세히 설명했다. 잎이 노랗게 영잎이 되면서 서서이 꼬타리가 벌어져야 한다고 했다. 대부분의 꼬타리가 싱싱하고 잎이 아직 파란 빛인데 제대로 익지도 않은 일부 꼬타리가 말라서 터지고 알갱이가 흘러 내리는 것이 그 피해라고 했다. 쓰러지지는 않았지만 태풍에 뿌리까지 흔들리면서 그렇게 되었다고 했다.

 

사흘만에 참깨 수확을 끝냈다. 흘러 내린 알갱이를 모아 보니 한두 되는 되지 싶다. 받은 것이 저 정도이면 논 바닥에 흘린 것은 얼마나 많을까. 저 멀리서 혀를 차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참깨 수확이 급해서 잠시 중단했던 고추 수확도 이번에는 사흘이나 걸려서 끝냈다. 그리고 베낸 그 자리에는 김장 배추를 심었다. 대충 150포기는 조금 넘을 듯하다. 채소 농사는 어릴 때 해충 방제가 성공의 관건이다. 어느 정도 자란 후에는 벌레가 좀 먹어도 남는게 있지만 요맘때 벌레가 설치면 대책이 없다. 친환경 농사라 살충제를 함부로 뿌리지 않으니 더욱 그렇다. 


2019.8.25에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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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묶어서(8.23)

 

차로 운반해서 (8.22)
건조를 위해(하우스를 빌려서)(8.22)
베는 중 흐르는 것을 받은 것
참깨 파종하던 날(6.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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