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과더불어

들깨 베기

임재수 2022. 11. 4. 17:58

들깨 베기

땅과더불어

2019-11-18 22:07:08


전하께 숙배를 드리고 난 뒤 주위를 살펴 보니 분위기가 영 이상했다. 일부는 동정과 연민이 가득 담긴 시선을 보내기도 했지만 나머지는 외면했다. 좌정을 하고 나자 형조판서가 일어 나더니 나를 향해 시비조로 질문을 시작했다. 

"지난 유월 축성사의 소임을 맡은 적이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그 때 서북지방에 성을 쌓았지요?"

"예!"

"그 임무 제대로 수행했습니까?"
"능력은 없지만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최선이라? 그 비용 다 빼돌린 거는 아니구요?"

"머머 머~시라구요?"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와 더듬거리는데 옆에서 호조의 우대감이 나섰다.
"나라의 형편이 안 좋아서 새참으로 막걸리하고 간단한 안주겸 간식외에는 경비 지원한 적이 없습니다"
이어서 노대감이 말했다.
"고추 지지대 어망 고추끈 그리고 가위와 망치가 우리 공조에서 지원한 자재의 전부였습니다"
병조의 최대감도 말했다.
"저희도 작전 중이라 병력을 지원하지 못했습니다."
 
다시 형판이 물었다.
"시일이 얼마나 걸렸습니까?"
"체력이 부족해서 하루에 두어 시간 밖에 못하니 사흘 정도 걸렸습니다." 
"그래도 그렇지 사흘이나 걸려 쌓은 성이 하루 아침에 무너졌다는데 변명치고 참 구차합니다"
"하루 아침에 무너지다니 말도 안됩니다. 가끔씩 밤을 지내고 나면 적군이 침투한 흔적이 있어 뚫린  곳을 찾아 보수를 하곤 했지요. 노나라 군사들이 워낙 간교하고 또 은밀하게 침투하는지라"
"무슨 소리요 연나라 군사들이 추수를 앞둔 들판을 싹 쓸어 가고 있다는데"
"서 설마 그럴리가~"
"수백명이 떼를 지어 넘나 든다면 성은 있으나마나지요. 왕창무너지 않고서야 ~" 
 
그 때 마침 현장을 확인하러 갔던 순변사 조대감이 돌아왔다. 침투한 도적은 장나라 군사라고 했다. 그럼 그렇지 우방국인 연나라의 순한 백성들이 그럴 리가 없다고 눈군가 말했다. 연나라 백성이든 장나라 군사든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형판이 열을 올렸다. 지난 여름 어망으로 쌓은 성이 제 구실을 하고 있는지가 사건의 본질이라고 주장했다. 내가 생각해도 그것은 옳은 말이었다. 다들 형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조대감의 입만 쳐다 보았다.
"약간 허술한 면도 있었지만 어망으로 쌓은 성치고는 제법 괜찮은 듯했습니다. 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 무슨 말이오"

"장나라 도적떼는 공군이었습니다."

"공군이라면?"

"떼를 지어 하늘을 훨훨 날아 다니는데 성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증거도 없이 비용을 빼돌렸다고 원로 대신을 모함한 형판은 사퇴하시오"

평소 나하고 친했던 김대감이 형판을 공격하고 나섰다.

 

만세라도 부르고 싶었지만 참았다. 내 허물을 벗은 것은 다행이지만 이 비상한 시국에 그냥 있을 수는 없어서 순변사 보고 물었다.

"성도 쓸모가 없다면 도대체 저들을 무슨 막는단 말이오?"

"최대한 추수를 빨리 끝내는 것이 상책이옵니다" 

그래서 나는 주청을 드렸다.

"전하! 추수도감을 설치하고 추수를 서둘러 주시옵소서"

"오늘부로 추수도감을 설치하니 임대감이 도감사를 맡으시오"
"전하 소신은 그 막중한 책임을 감당할 수 없사옵니다."
"시키만 시키는 대로  할 일이지 웬 이유가 그리 많소" 
 
그렇게 말씀하시는 전하의 얼굴이 어느 순간 옆사람 얼굴로 바뀌었다. 일어나 보니 벌써 밥상을 차리고 있었다. 눈꼽만 씻고 안약을 넣고 아침을 먹었다. 전날 미리 갈아 놓은 낫과 그물을 챙겨 들고 뒤뜰 논으로 나갔다. 며칠전부터 참새떼가 연일 들깨 쪽으로 덤벼 들었다. 이쪽에서 쫓으면 저쪽으로 가고 저쪽에서 훌치면 또 다른 곳으로 달려 드니 감당이 안 되었다. 익기도 전에 달려 들어 단물만 짜 먹으니 쭉쟁이만 남는다고 옆에서는 안달을 했다. 그까짓 것들이 먹으면 얼마나 먹겠느냐고 하시는 사람도 있었고 저렇게 많은 것들이 떼로 덤비는 것은 생전 처음 본다고 말씀하시는 분도 계셨다. 그만큼 동네 어른들께서도 의견이 갈렸다.  

 
들깨는 일단은 쪄(베어)서 그 자리에 눕혀 놓았다가 마르면 타작을 하게 된다. 눕혀 놓은 들깨를 준비한 그물로 덮어서 참새떼로부터 지키려는 복안이었다. 그러니 면적은 넓고 그물은 적어서 적당하게 모아야만 했다. 탈곡기에 밀어 넣기 좋게 이삭 부분만 잘랐으니 남겨 둔 밑둥도 다시 제거해야 그물과 땅 사이에 틈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시간도 많이 걸리고 힘도 많이 들었다. 그런데 옆사람은 그루터기도 자르지 않고 찐 들깨를 모으지도 않았다. 이렇게 하면 그물로 덮을 수 없다고 해도 들은체만체였다. 참다가 보다가 어쩔 수 없이 무엄하게도 다시 한번 이의를 제기했다. "꼼꼼하기는! 우리가 머 진짜 농사꾼도 아니고 대충하만 대여!"라는 대답만 돌아 왔다. 평소에 내가 하던 말을 하다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사흘째 되는 날 오후 작업이 거의 끝날 무렵 옆사람은  "모든 일에 경중이 있고 우선 순위가 있는 법"라는 말만 남기고 베낭을 메더니 산으로 올라갔다. 나머지 마무리는 혼자서 했다.  
 
그런데 베어서 눕혀 놓은 들깨에는 그놈의 참새 떼가 덤벼 들지 않았으니 참으로 이상했다. 원래 그렇다고 이웃 사람들이 그제서야 가르쳐 주었다. 옆 사람은 나보다 먼저 그 말씀을 들었는지 아니면 산악행군인지 수색정찰인지 거기에만 눈이 멀었던 것인지 나는 아직도 그 속내를 모르겠다. 준비한 그물은 쓸모가 더 이상 없었다. 그리고 또 일주일이 지난 후 타작을 했다. 기계 사용이 어렵다는 생각에 오전에는 도리깨질을 했다. 그런데 지도자가 가 권해서 오후에는 기계로 작업을 했다. 반넘어 남았던 것이 한 시간 조금 더 걸렸으니 너무 쉬워서 오전에 고생한 것이 허탈했다. 너무 겁내지 말고 새로운 시도를 다시 말하면 모험도 해 봐야 발전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작이 끝나자 이장댁 옆에 있는 기계로 싣고 가서 정선(선별)까지 끝냈다. 팔십키로가 조금 안 되는 양이었다. 친환경 무농약 농산물이라고 조금 비싼 가격에 친가 처가 형제자매들 그리고 아는 분들께 강매(?)했다. 씻어 말려서 기름을 짜거나 거피를 내서 보내기도 하고 그냥 보내기도 했다.

 

동영상[들깨밭에 나타난 장(작)나라 도적들] 

이렇게 모아서
덮을 그물도 준비했건만
빨리 끝내고 싶은 옆사람은

 

고라니의 침투경로는 어디인지?
들깨 말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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