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과더불어

1호조합원의 임무

임재수 2022. 11. 4. 18:00

1호조합원의 임무

땅과더불어

2019-12-23 10:55:17


금년에는 농사 지은 무로 말랭이를 조금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혼자서 먹기에는 양이 조금 많다는 생각에 상주생각(상주로컬푸드협동조합 직매장)에 출하하기로 했습니다. 비닐팩에 가득 담으니 220g이 되었습니다. 생산자가 가격을 직접 매기는 것이 원칙이지만 얼마를 받아야 할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냥 가지고 나가서 보니 누군가400g을 담아서 5000원에 내 놓으셨습니다. 너무 비싸면 욕먹을 것이고 너무 싸서 덤핑이 되어도 동업자에 대한 도리가 아닙니다. 계산기를 두드려 보고 2700원으로 정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매장에 무가 떨어졌다는 문자를 받고 생무도 10개를 가지고 나갔습니다. 나가 보니 다른 사람에게도 문자가 갔는지 이미 무가 많이 나와 있었습니다. 비교해 보니 크기도 중간이고 매장 직원의 권유도 있고 해서 1500원으로 정했습니다. 그리고 2~3일 만에 다 팔렸습니다.

 

다시 며칠 뒤에는 무말랭이를 더 가져 오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남은 것이 없다고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고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리고 내외가 상의를 했습니다. 몇 개 남겨 둔 무우를 다시 썰어 말리기로 했습니다. 제대로 보관을 못해서 썩혀 버린 일도 있었으니 나중에는 사 먹는 한이 있어도 이 기회에 다 처분하기로 했습니다. 둘이서 열심히 썰었습니다. 햇살이 푹 올라오면 밖에 늘어 놓았다가 저녁에는 거두어서 군불 땐 방에다 펴 놓았습니다. 12월초의 날씨에 얼면 안 되고 건조기에서 말려도 맛이 없다고 하기에 신경을 좀 썼습니다.

 

다 말린 뒤에 팩에 담다가 옆 사람이 푸념을 했습니다. 무 28개를 썰어 말렸는데 6봉밖에 안 나온다고 했습니다. 둘이서 허탈한 쓴 웃음을 지었습니다.

"그양반은 우째서 그 가격이 나왔으까이! 계산기도 안 두디리 밨남?"

"뚜드리 바도 빌수 읍더만"

"무신 말?"

"매장에서 뚜디리 밨다민서?"

"어이그 거 계상기 말고"

"계산기에도 두 가지가 있남?"

"살다 보만 그런 수도 있능겨. 1호 조합원 임무라고 생각하고 넘어 가자구"

 

직매장을 개장하고 견학을 다니면서 배운 것이 있습니다. 신선도 유지가 식품매장 성공의 비결이라고 했습니다. 소비자가 한 곳에서 장을 다 볼 수 있을 만큼 다양한 품목을 갖추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조건이라고도 했습니다. 그런데 나는 거리가 멀어서 매장을 자주 방문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신선한 야채를 공급하고 제 때 회수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고춧가루 고추 부각 무말랭이 다래순 건표고 등의 건조 식품입니다. 많은 양은 아니지만 다양한 품목을 갖추는데 일조하자고 그것이 1호 조합원의 임무라고 생각했습니다.

 

각설하고 나처럼 '계산기 두드릴 줄' 모르는 생산자조합원이 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생산자가 가격을 매기고 출하하는 것이 취지는 좋지만 세상물정(농촌실정)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무리라는 생각도 듭니다. 체제를 바꾸자는 말은 아닙니다.

 

좀 아시는 조합원님들 매장 한번씩 둘러 보시고 가격이 적정한지 다른 문제는 없는지 조언을 주시면 좋겠습니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다 함께 득을 보려면 적절한 가격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조합의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그건 그렇고 우리집 무말랭이 구입하신 분들 땡잡으신겁니다. 내년에는 그 가격에 못 내놓습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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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로컬푸드협동조합 조합원 밴드에 올렸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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