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을거리
그 시절 읽을 거리는 교과서밖에 없었다. 아참 한 가지 더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것도 교과서다. 아홉살 위의 누님께서 사용하셨던 국민학교 교과서다. 작년에 올렸던 동시 "유리창에 호호 입김으로 흐려 놓고 ~"도 거기서 읽었고 "지옥 탈출의 유일한 끈 파 한 뿌리" 이야기도 거기서 읽었다.
조금 뒤 그러니까 3~4학년 무렵 동화책 백여권이 황송하옵게도 산골분교에 납시었다. 불을 때면서(쇠죽 끌이기 위해)도 틈틈이 읽었다. 아니 책에만 정신이 팔려서 아궁이 밖으로 불이 번져 나오는 것도 모르는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알리바바와 사십인의 도적(열려라 시무시무!) 알라딘의 요술램프 등도 그때 읽은 것으로 기억한다.
읍내에 있는 중학교에 들어가니 완전히 별천지였다. 학교 도서관에는 만여권의 책이 천지사방으로 돌아가며 꽂혀 있었다. 입장만 하면 마음 놓고 골라 읽을 수는 있었다. 하지만 입장이 쉽지 않아서 안타까웠다. 개가식이었는데 조금만 늦게 가면 '입장불가'라는 팻말이 앞을 가로 막었다. 종례시간이 길면 안달이 났고 몸부림을 쳤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왜 안 낑가주시오? 맨날 밧쓰민서.
--뉘시오?
--문지라고 아실랑가?
--앗, 미안! 큰집 비름빡에 붙어 살던 신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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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님의 교과서에서 읽은 "지옥 탈출의 유일한 끈 파 한 뿌리"이야기를 기억을 더듬어 재구성해서 올립니다. 검색하면 다 나오겠지만~
교과서 삽화에서는 지옥이 우물처럼 생겼습니다. 관세음보살께서는 우물 밖에서 안으로 파를 들이밀었고 지옥에 빠진 여인은 파 뿌리를 잡고 매달렸습니다. 그 여인의 발목을 잡고 다른 사람이 매달렸고 그 밑에 또 다른 사람이 그리고 또 다른 사람이 줄지어 매달렸습니다.
지독한 구두쇠 여인이 있었다. 다른 악행은 지었는지 모르겠다. 죽어서 지옥에 떨어졌다. 관세음보살께서 현신하셔서 질문을 하셔다. 살아 생전에 적선한 일이 있느냐고. 단 한번 있었다. 이웃집 여인에게 파 한 뿌리 건네 준 적이.
보살께서 "이것이 맞느냐?"고 파를 내 보이며 물으셨다. 반색을 하면서 맞다고 대답을 했다. "그럼 이 파를 잡아라 지옥 밖으로 꺼내 줄 터이니". 그래서 파를 잡았다. 그리고 발밑을 내려다 본 순간 아찔했다.
파 한 뿌리에 저렇게 많은 사람이 매달렸으니 이 파가 끊어지면 다시 지옥으로 떨어질 것은 뻔한 이치였다. 매정하지만 내가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다리를 흔들어 매달린 사람을 떨구었다.
악착같이 흔들어 마지막 남은 한 사람이 떨어지는 순간 파가 끊어지고 그 여인은 다시 지옥으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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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관세음보살이었는지 천사였는지도 불확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