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일상

세상일이란

임재수 2024. 6. 16. 22:20

그 시절은 나도 목에 힘 좀 주고 살았다. 교육정보부장이라는 보직이 누구를 위해서 생겨난 것이라는 말도 있었다.  임모의 기침 소리만 들어도 말썽을 부리던 컴퓨터가 정신을 차린다는 우스개 말도 떠 돌았다. 교내의 모든 컴퓨터를 내손으로 손봤다.

소규모 중학교라서 그리 많은 숫자는 아니었다. 교무실 행정실10여대 교실 3대 컴퓨터실 20여대 포맷하고 윈도우 응용프로그램 설치했다. 램이나 랜카드 등을 인터넷 쇼핑몰에서 구입해서 수리하고 교체도 했다. 손재주가 부족하여 다루기 거북한 경우 학생을 불러 말로만 수행하기도 했다.

2009년인가 그 다음해인가 "정보화장비 유지보수계약"이라는 제도가 생겼다. 매월 일정한 금액을 지불하고 수리업체에서 주기적으로 학교를 방문하여 컴퓨터를 손봐 주는 제도였다. 교사의 업무를 경감시켜 본연의 임무(교육활동)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였을 것이다. 필요 없다고 말씀 드렸고 내 의견은 접수되는 듯했다.

그런데 몇 달 후 동료 선생님들 사이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나왔다. 돈을 내고 업체에 맡겨야 당당하게 요구를 할 수 있다고 했다.  후배 선생님들이 이것저것 자주 부탁하기가 조심스럽다고도 했다. 나는 이미 동료가 아니고 부탁하기에 부담스러운 선배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마음에 안 들었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시방 한가하게 옛날 이야기나 할 처지요?
--예?
--택배보내는 것 말이요!
--그게 어때서요?
--이전에는 주소 쓴 종이쪽지하고 오천원 택배 상자에 끼워 놓으면 다~
--문자 보내시든지 전화를 하시면 제가~
--글쌔 오천원만 내면 다 되는 일을, 왜 제 삼자에게 부탁을 해야 합니까? 미안하기도 하고~

조금 번거롭기는 했지만 기꺼이 감수하겠다고 나선 일이었다. 하지만 상대방의 입장에서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세상일이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리 단순하지 않은 것이다. 15년 전의 일도 그렇고 요즘의 일도 그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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