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앉은 저노인은 사람같지 아니하니
어느 날짜 어느 시에 신선께서 내려 왔나.
슬하에는 일곱 아들 모두모두 도둑이니
하늘에서 천도 훔쳐 열심으로 봉양했네(주1)
방랑중에 들린 잔치집에서 한잔 얻어 마시고 거나하게 취한 김삿갓이 남긴 축하시다. 슬하에 아들을 일곱이나 두었고 회갑연을 차렸으니 복 많은 노인네라고 할 것이다. 사람같지 않다고 했으니 시작부터 삐딱하다. "이런 미친 놈이 있나?" "내 이놈을 당장에~" 흥분한 측근이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술상을 내리쳤을 것이다. 당장에 요절을 내겠다고 나선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점잖고 침착한 주인장이 흥분한 측들들을 말리고 나서야 이야기가 된다. 아니나 다를까 기막힌 반전이 일어났다. 사람 같지 않다던 주인은 갑자기 신선이 되었다. 그리고 도둑이 되었던 일곱 아들이 천하의 효자가 되는 반전이 또 한번 일어 났다. "그래도 그렇지 도둑은 너무한 것이 아니냐"라고 하지 마시라. 부모를 위해서 하는 짓이라면 도둑질보다 더한 일도 용납되던 시절이었다.
내 이야기도 아니고 책보면 다 나오는 것이니 그만 하고 양념으로 아니 고명으로 내 이야기 한토막 곁들이겠다. 어느 교장선생님이 직원들 모아 놓고 한턱 내셨다. 회갑이라는 말도 있었지만 그냥 가볍게 저녁한끼 내는 자리라고 했다. 술잔이 서너 차례 오고가고 어느 정도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그 양반이 일어섰다.
--자 이렇게 뜻 깊은 날 그냥 지나갈 수가 없겠지요. 모두들 잔을 가득 채워 주십시오. 못 드시는 분들도 꼭~ . 그러면 오늘의 주인공이신 000교장선생님의 "잔소리"가 계시겠습니다.
그 순간 나는 귀를 의심했다. 평소 농담을 잘 하시는 분이었지만 이거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취중에 일어난 실수이니 말리고 나설까말까 망설이는데 그 다음 말이 이어졌다
--잔소리는 술자리에서 "잔을 들고 하는 소리" 다시 말하면 "건배사"의 우리말입니다.
중언부언
그런데 나 같으면 승구와 전구를 바꾸어 놓겠다. 그러면 "사람같지 않은 노인(악담의 시작)", "일곱아들은 도둑(악담의 심화)", "노인은 신선(악담이 칭송으로 전환)", "일곱아들은 효자(칭송으로 마무리)"순으로 시상이 전개된다. 그래야 전통적인 한시 구성법(기승전결)에 부합한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반전이 한번 있고 난 뒤 두번째 악담에서는 긴장도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면 반전의 묘미도 당연히 반감된다. 이것이 바로 원시가 지닌 "옥의 티"가 아닐까 생각한다.
====================
주 : 김립시선(金笠時選) 박용구역편, 정음사1977
====================
'웃음과더불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불량00 (0) | 2025.04.10 |
---|---|
주머이에 돈이 있으면 (0) | 2025.03.13 |
니네 마실앤 이른거 읍지? (1) | 2025.02.06 |
황금폰 (0) | 2024.12.25 |
석탄주 (0) | 2024.12.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