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과더불어

오대독자 득남기(상)

임재수 2022. 11. 4. 17:31

오대독자 득남기(상)

웃음과더불어

2019-03-31 10:43:42


그 사람을 만난 것은 팔십년대 중반이었다. 그때 그는 자신을 오대독자라는 별명으로 소개했다. 우리 부서에 새로 전입 온 신소임 여사의 신랑되는 분이라고 했다. 우리의 동료이자 그분과 죽마고우라는 우모씨의 주선으로 우리를 집으로 초대했는데 그 자리에서 그랬다. 돌도 안 지난 아들이 있으니 아내의 처지를 잘 배려해 달라고 했다. 언변이 얼마나 능숙한지 초면이 대부분임에도 불구하고 대화를 주도해 나갔다. 화제가 동서양의 역사나 철학 그리고 국내 정치와 국제 정세 등을 막힘 없이 넘나들었다.

그런데 이야기 도중에 숙부가 나왔다. 그래서 내가 오대독자가 맞느냐고 물었다. 진짜 오대독자는 아니고 별명이라고 했다. 당신네들 보고 선생님이라고 부르면 별명이 아닌 것과 똑 같은 이치라고 했다. 위로 누나가 다섯이나 있는 독자기는 해도 아버지는 삼형제 중 장남이고 할아버지도 독자가 아니라고 했다. 할머니께서 <오(吳)씨네 집안 대(代)를 이을 아주 소중한 독자>니까 오대독자가 아니고 무어냐고 우기셨다고 했다. 그 대목에서 좌중은 한바탕 배꼽을 잡고 웃었다.

그런데 다음에 이어진 이야기는 분위기를 그만 숙연하게 만들었다. 주변 사람들 특히 누님들과 사촌형님들께 마음의 빚이 참 많다고 했다. 할머니께서 오대독자(사실은 장손)라고 어릴 때부터 자신만을 감싸고 돌았다고 했다. 맛있는 것이 생기면 혼자만 몰래 부르시곤 했지만 그게 비밀이 될 수 없었다. 골목에서 놀다가 넘어져서 무릎에 생채기라도 나면 누나들뿐만 아니라 사촌형들까지 혼이 났다고 했다. 그래서 그 별명을 기억하면서 그리움과 미안한 마음까지 되새긴다고 했다.

그때 옆에서 듣고 있던 신여사가 빙그레 웃으면서 한마디 보탰다. 당신이 진 빚을 왜 나핱네 떠 넘기느냐고 했지만 가시가 박힌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이 양반한테는 <명새기> 라는 별명도 있다고 했다. <명색이 00란 사람이~>라는 식으로 <명색>이란 단어를 입에 달고 있었기에 <오명석>이란 이름과 발음도 비슷한 <명새기>로 부른다고 했다. 그날도 <명색이 장관인데>등의 말이 자주 나왔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딸딸이 애비>로 부르기도 했는데 얼마 전에 득남을 해서 이제는 사라진 별명이 되었다고 우모씨가 보탰다. 그리고 모임이 끝나고 집을 나오면서 친구들 사이에서는 명새기가 그런 뜻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니까 그양반은 음양의 조화라고 할까 남녀간의 이치에 대해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해박한 지식을 보유하고 있다고 했다. 다른 분야에 대해서도 그렇기는 했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래서 명새기[명색(明色)-색의 이론에 밝은 사람]이라고 언제부턴가 부르게 되었다고 했다. 그날의 자리에는 신여사와 또 다른 여직원이 있었기에 품위 있는 대화만이 오고 갔을 뿐이라고 했다. 그리고 언젠가 우모씨를 포함한 우리 부서 남자 직원 세명과 만나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고금소총이나 야사에 나오는 골계담을 위시하여 자신의 실전 경험담까지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무궁무진하게 이어졌다. 그 분 말투를 빌려 표현하면 명색(明色)이라는 명색(名色)에 조금도 모자람이 없는 입담이었다.

 

그런데 그 양반 이론에만 능했지 실전에는 그리 능숙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것이 우모씨의 해석이었다. 아니 어쩌면 실전 경험담이라고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모두 남들의 이야기를 재구성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평소의 삶과 태도로 보아 그럴 인물이 못된다는 것이 그 근거라고 했다. 그 해석은 장손을 얻기 위한 요절 복통의 이야기 하지만 웃을 수만은 없는 전설에서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사실 그의 "득남기"는 남의 안방에서 일어난 은밀한 이야기이니 자세한 내막은 전혀 알 길이 없다. 따라서 이어지는 이야기는 대충 전해 들은 1%의 사실에 적절히 살을 붙여 재구성 했음을 밝혀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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