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과더불어

운수좋은날

임재수 2022. 11. 4. 17:35

운수좋은날

웃음과더불어

2019-04-08 07:52:39


된장 냄새가 코를 찔렀지만 조금만 더 자려고 이불을 뒤집어 썼다. 어제 밤에 아니 자정을 넘겨 오늘까지 놀았던 탓이다. 그런데 잠결에 들려 오는 아버님의 말씀에는 노여움이 잔뜩 묻어 있었다.

“만호는 아직 자나?”

“늑게 드러왔응께 좀더 ~”

“잘 하는 지시다 공부한다능기”

“그동안 힘드러썽께”

“누군 호강했대? 지 또래들은 소몰고 밭갈았구만”

“그래도 시험 끝난지 미칠 안 대쓰니”

더 이상 누워 있을 수가 없었다. 일어나 대충 이불을 정리하고 세수하고 안방으로 건너 갔다. 아버님은 상을 물리고 담배에 불을 붙이고 계셨다. 어제 저녁에 편 갈라 내기 화투 친 끝에 라면을 끓여 먹었으니 밥맛이 영 없었다. 표시 안 내려고 꾸역꾸역 입으로 밀어 넣는데 말씀을 계속하신다.

“사날 슀으만 대찌. 책 보는기 힘들만 나무라도 해바라.  맨날 놀고 댕기만 사람 베린다.”

“.....”

“평생 공부해야 할 노미 힘들다카만 안 대지?”

“....”

“다리도 먹고 살라고 악써 가미 일한다.”

“야, 잘 알게씁니다”

“나 오늘 장에 강께 늦걸랑 시죽이나 끼리 조라”

“예~”

건성으로 대답을 하고 숟가락을 놓았다. 사랑방으로 건너가서 책을 펴 들었지만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냥 덮어 놓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합격자 발표 기간이 열흘인데 아직도 나흘이나 남았다. 기다리는 동안 너무나 지루해 하니 남들이 권해서 어제 처음으로 피워 본 담배였다. 

 

그때 옆집 사는 진철이가 나무하러 가자고 불렀다. 나보다 한 살이 많지만 국민학교를 같이 다녔다.  중학교 동기인 구배도 함께 왔는데 우리 집안 백호 형님의 처남이라고 했다. 문암인가 와동에서 자랐는데 진철이와 나하고 셋이 동기였다. 입대가 얼마 안 남아서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두고 누님댁에 며칠 쉬러 왔다고 했다. 낫을 챙기고 새끼줄을 찾는데 그냥 가자고 재촉한다. 칠기(칡) 덩굴 걷어서 묶으면 된다고 했다. 모퉁이를 돌아서는데 돌담 위로 순녀가 얼굴을 내 밀고 한마디 했다.

“어제는 고마바써. 라면이 을매나 마싯던지 이베 쩍쩍 달라 붙더라.”

“머~어? 시방 누구 약 올리는거여” 진철이가 대꾸를 했다.

“그키 억울하만 오늘 저녁에 또 한판 하등가”

“그래 오늘 저녁에 우리 셋이 가께 미연이 민지도 오라고 해 둬”

그리고 우리는 뒷산으로 올라 가서 나무를 했다. 우리가 두 단도 못해서 진철이는 석단을 묶어서 지게에 짊어 놓았다. 그리고 나와 구배의 하는 것까지 도와서 끝내 놓고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오늘은 이기야 할낀데”

“맞아 재미로 하는 거지만 지고 나니 약올라여”

“하지만 그기 어대 맘대로 대나”

“그거뜰 기고만장 하는 꼴 못바 주겟더라”

그때 구배가 나섰다.

“그럼 이렇게 하자구. 미리 신호를 보내는 거야. 왼손으로는 먹으라는 신호를 오른손으로는 먹지 말라는 신호를 보내는 거지. 그렁께 머리를 만지면 비 코를 만지면 풍이고 턱을 만지면 난이라~”

“그거 참 묘수다” 

 

오후에는 책을 좀 보다가 깜빡 잠이 들고 말았다. 정신을 차려 일어나니 짧은 겨울해가 넘어 가려고 했다. 허둥지둥 쇠죽을 끓여서 퍼주고 저녁을 먹었다. 약속 장소로 가니 시간이 조금 빨랐는지 다른 사람은 오지 않았다. 이제 막 나가려던 백호 형님과 마주쳤다.

“성님 마실 가요?”

“응, 참 너 우예 댄나”

“아직 발표 안나써요, 나흘이나 남았어요”

“ㅉㅉ 애간장 다 태우는구마”

“머 대겠지요 디린님 너무 걱정 마이소”

“참 처남하고 동기라 캤지”

“야 진철이하고 셋이 그래요, 저도 며칠 전에 아라심더”

“나는 나갈 테니 잘 놀아”

“예~” 

 그리고 좀 있다가 미연이가 왔다.

“작은 엄마 나 왔어, 사형 저녁 잡쏴써요?”

"사형이 아니고 사돈 어른인데~"

"아재는 머 그키 까다롭게~"

"맞습니다. 그냥 핀하게 대합시다!"

구배도 맞장구를 치는데 진철이 순녀 민지도 왔다. 다시 화투판이 벌어졌다. 남자 셋 여자 셋이 각각 한편이 되어 치는 민화투다. 이백 띠를 먼저 나면 이긴다. 삼판 양승제다. 각편 세명 중에 패가 안 좋은 하나가 들어가고 이대이로 친다. 물론 패를 상대편에도 보여주지 않지만 우리편에도 보여줄 수 없기에 모든 것을 눈치로 판단해야 한다. 첫 판은 또 졌다. 신호가 어긋났기 때문이었다. 담배 한대 피우자고 하면서 밖으로 나가서 낮에 한 모의를 확실하게 확인을 했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내리 두판을 이겨서 남자들이 최종승자가 되었다.  

 

"빨랑빨랑 라면들 사오소"

"에이 디린님 오늘은 지가 살게요 동생도 있응께"

"어떠케 이긴 건대~"

"형님이 나가민서 준 돈으로~"

"그건 낼 저게 씁시다. 오늘은 자들한테 반드시~"

"아재도 참 너무하시네. 이 어린 조카한테 꼭~"

"어리다니 무신 말씀 나보다 석달이나 빠리민서, 라면 사오면 이 어린 아재가 끓여 올리겠수"

결국은 셋이서 밖으로 나갔다. 기다리는 동안 각자 살아온 이야기가 오고 갔다. 아버님 말씀처럼 회사 생활한 구배의 이야기도 눈물겨웠고 농사 짓는 진철이 사정도 무척 힘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참 후에 부엌문 여는 소리가 나고 덜거덕거리더니 상이 하나 들어왔다. 밥이 한 양푼에다가 짠지가 한 보시기 담겨 있었다. 

"이게 라면이여?"

"맨날 먹는 밥으로 때운다고? 말도 안 대지"

그런데 이어서 주전자하고 술잔도 두어개 들어 왔다. 그리고 골패처럼 썬 두부도 있었다. 갑자기 눈이 휘둥그래졌다. 그만하면 됬다는 생각을 하면서 진철이를 보니 그 친구도 더 이상 시비를 걸 눈치가 아니었다. 

마시고 보니 제법 속이 짜르르했다. 도가 막걸리가 아니고 집에서 담은 전단지였다. 안 마시는 두 사람과 입에만 대다만 형수님을 빼고 넷이서 제법 마셨다. 아침에 아버님께 지청구르 들었기에 어제보다 좀 일찍 일어났다. 신을 신고 일어 서려는데 미연이가 양푼을 내 밀었다. 

"아재는 이거 가지고 가셔"

"그리고 진희네 오빠는 주전자 챙기고"

'아뿔사 당했구나'그제서야 나는 상황을 파악했다. 짠지 맛이 어쩐지 익숙하더라는 생각도 들었다. 집에 들어 가서는 부엌문을 열지 않고 양푼은 그냥 마루 위에 놓고 건넌방으로 들어가 잤다.   

 

비몽사몽간에 두 사람이 받는 대화 소리에 잠이 깨었다. 

"우리도 밥은 업서졌네만 그거는 빌거 아인데~"

"글쎄 오늘 저녁에 아버님 제사가 들어서 쓸건데"

"저런 낭패가~"

"어떤 거뜰인지 자피기만 해바라 가만 안둘끼다"

진철이네 엄마의 목소리에 점점 거세지는 것 같다. 더 이상 누워 있을 수만 없었다. 옷을 대충 걸치고 밖으로 나갔다. 두 분이 담너머로 마주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문제가 커지기 전에 실토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걸리하고 두부는 우리가 ~"

"니~니~니~가 ?" 기가 막히는지 엄마는 말을 제대로 못 이으셨다.

"지가 그런 건 아이지만 같이 머겄어요. 진철이도 항께 있었고~"

"머머 머시라 우리 진철이도 같이~  이누무 자석 손모가지를~" 진철이 엄마가 씩씩 거리며 돌아섰고 그때 진철이도 방문을 열고 나오던 참이었다. 나는 그만 힘이 쭉 빠져 돌아 서는데 시죽을 끓이시던 아버님께서 매서운 눈초리로 째려보고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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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게 먹고 나니 제사 지내려고 고이 모셔 두었던 두부였다는 내용은 저보다 3~5년 선배 되시는 분들의 이야기입니다. 박원규씨(종고모부님)께서 들려준 이야기를 각색해 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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