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당도에서 주운 고동을
소소한 일상
2018-08-06 11:00:46
무더운 여름날 저녁무렵에 금당도 해안가 나들이를 했다. 썰물이 빠진 후의 개펄 위는 모든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게라는 놈은 물 속에서만 노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물이 빠진 후 자갈 섞인 갯벌위를 질주했다. 어떤 놈은 도로 위까지 올라왔다. 동전보다 조금 더 큰 놈도 있고 어린 것은 개미나 파리 만한 것도 있었다. 모두들 즐거운 비명을 질렀고 울산서 온 어린 것들은 더더욱 신명이 났다. 나 역시 정신 없이 따라 다녔다.
눈도 어둡고(사실은 시야가 좁은 것) 동작도 둔한 사람에게는 좀처럼 잡히지 않았다. '나 잡아 봐라'하고 약을 올리면서 도망을 가다가 널부러진 돌틈으로 숨었다. 그러다가 고동이란 것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알맹이만 쏙 빼 먹고 내다 버린 껍질이 깔려 있는 줄 알았다. 한마디로 '지천'이었고 경상도 식으로 말하면 '천지삐까리'였다. 열심히 주워 담았다. 한 시간쯤 지나니 싫증이 나기 시작했다. 시작할 때는 즐거운 놀이가 언제부턴가 단순 반복작업으로 변했던 것이다. '산에 가서 고사리 꺾는 것은 오락이고 운동이지만 밭에다 심은 고사리 꺾는 것은 노동이다'라는 우리 동네 아저씨 말씀과 똑 같은 이치였다.
'너무 많아도 처치 곤란' '그럼 기다리는 동안 머 하노'
가벼운 언쟁 아닌 대화를 주고 받으면서 줍다가 말다가 그렇게 기다리며 시간을 보냈다. 게를 잡으러 조금 멀리 갔던 사람이 돌아 오면서 끝났다. 예닐곱 사람(세 집)이 주운 것이 한말은 실히 되지 싶었다. 집으로 와서 보니 가져 갈려는 사람이 없었다. 전날 조금 주워서 이미 맛은 봤던 것이니 아무도 욕심이 나지 않은 것이었다. 그러자 그 섬마을 출신인 집주인(강서방, 처 조카 사위)가 '그럼 조금 삶아서 먹기 좋게 손질해서 마을 사람들 나누어 주자. 이렇게 많아도 할머니들은 주우러 다닐 수가 없을 터이니'하고 안주인(처질녀)과 상의를 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나도 갑자기 욕심이 났다. '그럼 우리도 가져가서 마을회관에서 나누어 먹자'고 옆사람이 말을 끄냈고 결국 세 집에서 고르게 나누어 가져 가기로 했다. 쓸데 없이 살생만 한 것 같아서 언짢았던 마음이 조금 덜어지는 순간이었다.
밤 늦게 까지 해금을 시키고 삶았다. 적당하게 식혀서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 다음날 얼음팩 넣은 보냉(온?) 상자로 옮겨 담아서 차에 싣고 집으로 왔다. 다시 냉장고에서 하룻밤 자고 다음날 오후에 소주 네병과 함께 회관으로 가져갔다. 아지매들(사실을 할머니?) 너댓분이 모여 있었다. 보따리를 끌러 놓고 함께 준비해 간 전지가위로 꽁무니를 잘랐다. 그런데 아무리 빨아도 알맹이가 빠져 나오지 않는다. 이 사람 저사람이 해보아도 마찬가지였다. 바늘로 빼 먹으려고 들여다 봐도 속이 빈 껍데기 같았다. 생색좀 내려다 망신만 당하는 꼴이 되는 순간이었다.
이게 어찌된 일이냐고 금문도에 머물고 있는 강서방한테 전화를 걸었다. 냉장고에서 보관하는 동안 오그라들어서 그렇다고 했다. '껍질과 알맹이 사이로 바람이 숭숭 통하니 알맹이가 나오지 않을 것'은 지금의 내 해석이다. 따뜻한 물에 다시 굴리면 팽창하고 그러면 나올 것이라고 했다. 그 동안에 새로 오신 아지매의 해석도 그랬다. 다시 냄비에 물과 함께 붓고 깨스렌지에 얹어서 한참 데웠다. 너무 뜨거우면 손질하기 어렵다고 생각해서 적당하게 끝냈다. 그러자 쏙쏙 잘 빠졌지만 안 나오는 것도 많았다. 고르게 가열되지 않아서 그렇다는 판단에 한번 더 데웠다.
더 잘 나왔지만 여전히 안 나오는 것이 있었다. 그래도 맛있는 듯이 잡수는 것이 고마워서 열심히 손질하는데 그만 하라신다. 멀리서 온 것인데 정성이 담긴 것인데 두었다가 다른 사람도 맛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ㅎㅎ 머 이렁걸 가이고'라고 말했지만 그거는 아니라고 하셨다. 마침 제사를 지내고 싸오신 음식과 술이 있어서 여러 사람이 나누어 먹었다. .
"울산 같으만 이렁기 남아 있지 않을낀데" 돌게를 잡으시면서 처형께서 하신 말씀이었다. 그랬다 그곳에도 우리 농촌처럼 사람이 적었다. 섬마을을 지키고 계시는 분들은 대부분 노인들이었다. 젊은 분들은 생업에 바쁘셨고 고동을 줍고 게를 잡으러 쫓아 다닐 아이들도 없는 듯했다. 여기 저기에 쓰레기들이 흩어져 있다. 그물이나 부표 등 어구들의 잔해였다. 그것들도 사진으로 찍기는 했지만 여기에는 올리지 않기로 했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의 그늘이 어디서나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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