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그리고포항
소소한 일상
2018-11-06 11:30:08
백수의 생활신조 중 첫번째가 <공휴일에는 움직이지 말 것>이라고 들었다. 차도 막히고 길도 막히는데 백수까지 그날 움직이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 동기들은 평일에 모임을 한다. 민폐를 끼치지 않는다는 그럴 듯한 명분도 있지만 우리에게도 이득이 참 많다. 교통비 숙박비 식비 등 모든 것이 싸다. 게다가 백두산이든 낙동강이든 다소곳이 조용한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반겨 준다. 꼭 그래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시월 하고도 마지막 월~화요일에 경주포항 나들이를 했다.
집에서 예천역까지 1시간 남짓 걸렸다. 그곳에 차를 세워두고 친구 강모씨의 차를 이용했다.바로 가면 두 시간 조금 더 되는 거리이고 다음날 일정이 불확실해서 출발 전날 밤까지고민했다. 결국은 예천 안동에 사는 친구들과 넷이 동행하기로 했다. 예천까지 와서 다시 안동을 거쳐 경주까지 왕복하신 친구의 노고에 고맙다는 인사를 전한다.
서울과 대구에서 온 친구들을 장수두부마을에서 만나 점심을 먹었다. '손두부야 우리 마을에서도 잘 하는데 별거 있을까'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두부를 재료로 한 다양한 요리가 순서대로 나왔다. 말하자면 코스 요리인 셈이다. 마을 사업을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여러 가지로 배울점이 많았다.
점심을 먹고 서악동고분군으로 갔다. 누군가 "회장님의 지시를 고분고분 따르면서, 고분군으로 간다."고 해서 일행을 웃겼다. 무열왕릉 진흥왕릉 진지왕릉 헌안왕릉을 둘러봤다. <삼국통일의 중추>란 이름에 어울리게 태종무열왕릉은 규모나 보존 상태 등 모든면에서 위엄을 간직하고 있었다. 태종무열왕릉비는 비신은 없어지고 윗부분인 이수와 아랫부분인 귀부만 남아 있다. 그런데 그 귀부가 아주 새돌처럼 보였다. 천년 이상 풍화작용의 흔적이 보이지 않아서 이상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그 다음에 본 헌안왕릉(?) 아주 가까이에는 또 다른 묘가 있었다. 신라가 망하고 고려 조선을 거치면서 이리 되었으리라. 감히 왕릉을 범하다니 권력의 무상함을 여기서도 느꼈다.
동학의 창시자이신 수운 최제우 선생의 탄생지인 용담정을 오후 늦게 찾았다. 사람들이 별로찾지 않는 곳 그래서 호젓한 산사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곳이었다. 차에서 내리니 붉은 단풍잎과 노랗게 물들기 시작한 은행잎이 우리를 반겨 주었다. "정"자가 들어간 이름과는 달리 사방이 막힌 구조였다. 주변경관을 구경하기 좋은 곳에 사방이 트이게 지은 건축물이 정자라는 내 상식은 더 이상 맞지 않았다. 내친 김에 <루>와 <정>을 구분하는 기준까지 이야기가 나왔지만 여기에는 옮기지 않겠다. 정자 뒤쪽 오른편으로 맑은 시내가 흐르는데 물의 양은 적지만 작은 폭포도 있고 다리도 있는 그야말로 신선이 사는 세계같았다.
"그런데 인내천이 왜 이렇게 작아여?"
"먼 소리여?"
"성지에 있는 냇가라면 좀 크야 하는 것 아닌감 강은 아니라도 ~"
"인내천은 강이 아니고 도솔천과 같은 하늘이여"
"자네도 틀렸어 <인내>는 참아야 한다는 뜻이고 <인내천>은 천번을 참아야 한다는 것이여"
말과 글로 먹고 산 전력은 속일 수 없는 입담들이었다.
주차장에서 애완견을 안고 내리는 여인이 있었다. 안내원이 제지를 했다. "여기는 국립공원이라 애완견을 동반할 수 없다"고 했다. 결국 그 사람들은 관람을 포기하고 그냥 떠났다. 개를 반려동물로 생각하는 사람과 애완견마저 싫어 하는 사람으로 세상이 둘로 나누어졌다. 무엇이 자비이고 공존인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야 하는 시점이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다.
경주에 사는 동기인 나원댁의 집도 방문했다. 우리가 반가운 손님이었는지 주인댁 인심이 넉넉했는지 그날 그 집에느는 상서로운 무지개가 떴다. 여학생 둘과 주인은 거기서 자고 난 뒤 아침에 국을 끓여서 펜션까지 공수해 왔다. 또 다른 여학생 셋과 남학생 여섯은 펜션을 이용했는데 방도 여럿이고 주방과 거실도 넓고 깨끗해서 참 편리했다. 펜션 이용료는 대구사는양교수가 협찬해 주셨는데 사정상 모임에 참석하지 못했다. "찬조도 고맙지만 얼굴 찬조가 더 고맙지요"라고 단톡방에서 누군가 인사조로 말했다.
"짝이 참 잘 맞네요"
나원댁의 부군이시고 우리의 선배이신 사가 이임수교수님께서 하신 말씀이었다. 듣는 순간 가슴이 뜨끔했으나 손수 차를 내려 대접하시는 친절함에 안도했고 이어지는 유머 섞인 대화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녹아 들었다. 다음날에는 펜션으로 오셔서 아침 식사도 함께 하셨으며 용담정을 비롯한 경주의 문화유적에 대한 자상한 해설도 해 주셨다.
"여보게 내 고기 사게"
"무슨 소리, 이건 내 고기지"
다음날 아침을 먹고 포항에 있는 오어사를 찾았다. 처음에는 절 이름이 항사사(恒沙寺)였는데 신라의 고승이었던 원효 혜공 두분 선사께서 <내 물고기>라고 다투었다는 설화에서 오어사(吾魚寺)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절 옆에는 저수지가 있는데 오어지(吾魚池)라고 한다. 두 분 스님이 법력을 다투던 그 물고기가 이 못에 있던 물고기일까 이 못이 그때부터 존재했을까 생각해 봤지만 알 수 없었다. 절에서 현수교를 건너니 못 가장자리로 산책길을 잘 만들어 놓았다. 우리는 잠시 걷다가 시간이 부족하여 중간에 돌아왔다. 이름도 용도도 모르는 문화재를 봤다. 내가 너무 무식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사진으로 담아 왔다. 그리고 두 분 고승의 이야기를 생각하면서 오어사와 오어지를 내 방식으로 비틀어 봤다.
<오어사>는 <여보게 내(吾) 물고기(魚) 사게>
<오어지>는 <무슨 소리야 이건 내(吾) 물고기(魚)지>
다음으로 간 곳은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였다. 구한말 조선과 일본의 통상협정이 체결되면서 일본인이 정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일본식의 가옥이 남아 있었고 인기를 끌었던 <여명의 눈동자>도 여기서 촬영하였다고 하는데 포항시에서 관광지로 개발(복원?)했다고 한다. 우리 속의 일본 문화를 지우고 싶은 분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자랑스럽든 그 반대이든 그것도 어쩔 수 없는 우리의 일부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가까이 있는 호미곶 해맞이공원을 둘러보고는 점심을 먹으러 <복어잡는사람들>로 갔다. 그때는 여학생 하나가 더 합류를 해서 열셋이 되었다. 점심 먹고는 각자 집으로 왔다. 친절을 베푸신 이선배님께 변명을 하고 싶다. "오해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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