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
가족과더불어
2019-01-08 21:08:06
"한특 낸다고?"
"야!오늘 동네하고 난 뒤에"
"준비 좀 핸나?"
"홰 시키 났어요"
"단디 해라, 잘 모타만 내고도 인사 못드러~"
"나갈 채비 얼렁 하시야지요"
"내가 왜?"
"조은 일이 있으이 나서가이고 인사도 하고 사람들한테 술도 좀 건하시고~"
"실타 나는 그러니까 니가 해라~"
나는 그만 울컥하고 말았다.
"어린 저한테 모든 걸 미루다니 너무 하심니다"
"니가 및살인데?"
"스물 한 살밖에 안댔자나요"
"너한테 멀 미루았는대?"
"동생들 시집 장가 보낼 때도 전부 나한테~"
이번에는 기필코 모시고 나가리라고 다짐하면서 나는 그만 자리에 드러 누웠다.
"아부지 안 가시만 저도 안 갈랍니다."
그러는데 누님이 나섰다.
"왜 이카나 항갑 지내노코 사우도 바쓰민서 이제 와서 무슨 투정이나?"
내가 환갑을 지냈다고? 그참 이상하다?
그러던 차에 방송이 나온다. 이장님 목소리다.
"아아~ 알려 드립니다. 지금 곧 동회를 시작하겠으니 동민 여러분께서는 한분도 빠짐 없이 회관으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알려 드립니다~"
눈을 떠 보니 아무도 없다. 대충 옷을 챙겨 입고 회관으로 나갔다. 마을 사람 거의 다 모인 것 같았다. 이방 저방 그리고 주방을 찾아 다니면서 인사를 했다. 특별한 논란거리가 없으니 회의는 금방 끝났다. 곧 이어서 상을 펴고 자리를 마련했다. 포항에서 배달해 온 회를 안주 삼아 이사람 저사람 권하면서 나도 마셨다.
"내 술 한잔 바다 바"
친구 00가 잔을 내 민다. 이미 취기가 오르기 시작했지만 거절하기 어려워 잔을 받아서 마시는 시늉만하고 내려 놓았다. 그런데 옆에서 아지매 한분이 킥킥 웃는다.
"왜 웃어요?"
00가 그쪽을 바라보면서 물었다.
"한특 낸 사람 보고 내 술 바다라캉께 우숩지 앙그래"
"에이 아지매 00가 따루만 00술이지 머"
"어 짠돌이 자네가 낸다고? 먼 일이여?"
"쟈 막내 동생이 이번에 사무실 드갔대여"
"면사무소 예전에 드갔자나"
"교도소로 옴긴기 오래 댄는걸"
"차칸 아가 먼닐이래여?"
"거기 아이고 그어서 일하자나"
"그만 사무실 드갔다카는 거는 머라?"
"그건 나도 몰라여. 헌수마게 그러케 써 났어"
그러는데 이장님이 일어섰다. 손뼉을 쳐서 좌중의 시선을 모으더니 말했다.
"제가 깜빡하고 소개를 빠뜨렸네요. 우리 마을 출신 임재덕씨가 안동교도소에서 근무하고 있는데요. 이번에 사무관 승진 시험에 합격했다네요. 그래서 한턱 내는 건데 박수 한번 ~"
박수 소리에 일어나서 이쪽 저쪽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앉았다.
그리고 나자 00가 한마디 보탰다.
"그런일이 있다고? 나같으만 아부지 대신 소 한미리 잡는다."
누군가 또 말했다.
"나는 잘났든 못났든 동생만 있으만 술 사겠다."
"축하한다. 앞서 한말은 다 농담이고"
그렇게 어울려 마시다 보니 너무 취했다. 벽에 기대어 잠시 눈을 감았다.
그런데 언디선가 주고받는 말소리가 들린다. 처음에는 들릴듯말듯하더니 나중에는 또렷하게 들린다.
"근데 호0씨는 왜 안보여?"
"무슨 사정이 있겠지"
"그래도 사람을 불러 노코"
"맏아들이 대신 왔자나"
"우리가 호0씨 보고 왔지 칠성이 보고 온건 아니자나."
"요새 이런 것 못먹는 사람 어대 인노 나와서 인사를 하셔야지"
아버님 또래의 어르신들이다. 예의를 차린다고 내외한다고 아지매들이 진치고 있는 회관에 는 잘 안 나오시는 분들이다. 그냥 있을 상황이 아니다. 나는 슬그머니 밖으로 나왔다.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아버님 댁에는 전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뛰어 가서 모셔 올까? 그러면 너무 시간이 걸리는데 어쩌나?'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데 00가 나왔다.
"머하나 동네 어른들께 인사를 드려야지"
"내가 왜 하나, 지금 아부지한테 연락하는 중이여"
00가 잡아 끄는 바람에 안으로 들어갔다. 어쩔 수 없이 어른들 앞에 섰다.
"죄송합니다. 아부지는 급한 사정이 있어서 그러니까 몸이 편찬아서 그래서 이렇게 제가 인사를 대신해서 아부지 대신으로 인사를~"
"머야? 무슨 소리 하는거야?"
"쯧쯧 고주망태가 되었구만"
"저 아부지 세상뜬지가 언젠데"
어디선가 킥킥거리고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가 잔을 내 민다. 받아서 마셨다. 시원한 물이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노래방 기기 앞이다. 마이크가 손에 잡혀 있었다. 소근소근 빈정대던 어르신들은 어디로 가셨는지 안 보인다. 자주 만나던 동네 사람들만 남아 있었다.
"이렇게 모여서 축하해 주시니 참으로 고맙습니다. 아버님이 살아 계셨으면 소라도 한 마리 잡아서 잔치를 벌였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준비한 것이 약소합니다만 맛있게 드시고 재미 있게 노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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